[할리우드에서] '작지만 알찬' 독립영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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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할리우드의 여름은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블록버스터들이 지배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멀티플렉스 개봉관이 대작들만 상영하는 것은 아니다.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같은 대도시에 사는 재미 중의 하나는 블록버스터들의 틈새를 비집고 몇 군데에서만 한정 개봉하는 '작지만 알찬' 저예산 영화들을 찾아보는 일이다.

최근 개봉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 '러브 앤 섹스'(원제 Love & Sex)도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만 상영되고 있는 저예산 독립영화다.

발레리 브라이먼이란 신예 여성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미국 영화계에서는 적은 예산에 속하는 3백만달러(약 36억원)의 제작비로 단 20일만에 찍었다. 올해 초 선댄스영화제에서 호평받아 극장 개봉이라는 행운을 잡았다.

여주인공 케이트는 잡지사 기자로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지만 어떤 남자와의 관계도 오래 가지 못한다.

영화는 그가 성공적인 연애를 위한 기사를 쓰기 위해 지금까지 자신의 비참한 연애생활을 녹음기에 회고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사랑은 지뢰밭이다. 한발 내디디면 산산조각이 나는데도 사람들은 몸을 추슬러 바보처럼 다시 또 한발짝을 내딛게 된다" "사람들은 외로운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사랑을 한다" 등등 케이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사랑의 속성에 대해 계속 의문을 던진다.

섹스에 대한 열정이 식어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은 케이트가 13명의 남자와 실연의 아픔을 겪은 뒤 만난 괴짜 화가 애덤과의 사랑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기된다.

케이트와 애덤은 첫눈에 이끌려 연인이 되고 동거하게 된다.

초기의 두 사람의 애정과 열정, 그 후의 편안함, 오랜 부부가 느끼게 되는 성적인 무관심.짜증 등을 재치있게 쫓아간다.

결국 애덤은 뒤늦게 케이트와 같은 분방함을 누리기 위해 이별을 선언하는데….

스토리만 따지면 평범하고 진부하지만 '러브 앤 섹스' 는 성욕이 왕성한 여주인공을 내세웠다든지, 여성감독답게 여성의 섬세한 심리를 그려 할리우드식 로맨틱 코미디와는 다른 신선한 터치를 보여준다.

특히 여성 관객들로부터 매우 솔직해 공감이 간다는 반응을 얻고 있는데 감독은 실제로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썼다.

4년 동안 동료 감독인 애덤 리프킨과 나눈 사랑과 이별, 그리고 10년 만에 다시 팀을 이뤄 이번 영화를 만들기까지 자신의 애정생활을 솔직하게 영화로 만들어 화제를 낳고 있는 것.

브라이먼은 자신의 역을 키 1m77㎝의 미끈한 몸매를 가진 슈퍼모델 출신 팜케 얀센에게 맡겨 미소를 자아낸다.

로스앤젤레스〓이남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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