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북한 잘살게 되면 통일 비용 줄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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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6월 평양을 다녀온 뒤 한반도에 통일 열기가 가득해졌어요.

특히 남북한이 힘을 합쳐 어려운 북한의 경제를 살리고 남한 경제를 더욱 발전하는 계기로 삼자는 논의가 활발합니다. 이를 남북간 경제협력이라고 말합니다.흔히 줄여서 남북경협이라고 하지요.

남북경협이 잘되면 북한의 경제 사정이 좋아져 통일비용을 줄일 수 있는 이점도 있습니다. 통일비용이란 북한 경제를 남한 수준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북한에 도로·철도 등을 놓고 공장을 짓는 등 여러가지 투자를 하는데 드는 돈을 말합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통일비용이 1백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남북한간 경제력 차이가 클수록 이를 줄이는데 돈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으므로 통일 이전에 남북경협을 잘 해서 북한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게 중요하겠지요. 독일의 경우 통일 이후에도 옛 서독과 동독 주민간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이면서 애쓰고 있답니다.

남북경협은 1988년 ㈜대우란 회사가 북한에서 도자기를 들여오면서 시작됐습니다.그런데 90년대 초반 미국과 일본이 북한에서 자기 나라까지 날아와 터질 수 있는 핵폭탄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며 무기 개발을 중지하라고 요구해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됐고 남북경협도 얼어 붙었습니다.

94년 김일성 북한 주석이 사망했고 이어 수해가 몇년째 계속되면서 식량이 부족해 북한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자 남한이 쌀과 비료를 지원하면서 경협의 물꼬가 다시 트였습니다.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는 속담처럼 사정이 나은 우리가 북한을 도와준 것이지요.

김대통령이 98년에 취임하면서 ‘햇빛정책’을 꾸준히 편 결과 남북경협도 더욱 활성화되었습니다.

지난해 북한이 외국과 거래한 무역규모가 14억3천만달러인데 이 가운데 남북한 사이에 이뤄진 것이 3억3천만달러입니다.북한 전체 교역의 20%가 넘는데 대부분 우리가 사들인 것입니다.

남북경협 초기에는 고사리·꽃게·샘물 등 주로 북한산 농산물이 국내에 많이 들어왔지요.최근에는 평양 인근 대동강 공장 등에서 우리 기업의 부품을 가져다 조립한 컬러TV가 들어오는 등 점차 전자제품 비중이 커지고 있어요.북한에서 만든 담배(한마음)를 아빠가 피우는 것을 본 친구들도 있을 겁니다.

또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데 그치지 않고,우리 기업들이 북한에 들어가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든 뒤 남한으로 다시 가져오거나 제3국에 수출하는 투자도 갈수록 늘고 있답니다.현대그룹에선 옛 고려의 도읍지였던 개성에 큰 공장 단지를 만드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지요.

햇빛정책이 뭐냐고요.이는 김대통령의 통일정책을 말합니다.북한이 우리 정부를 신뢰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햇빛(화해정책)를 북한에 쪼여 북한이 자연스럽게 두꺼운 외투를 벗고 우리에게 다가오면서 마음(문)을 열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이 정책의 영향으로 분단 후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졌고 9월에는 48년에 끊겼던 철로(경의선=서울∼신의주)를 잇는 공사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기업인들은 북한은 임금이 싼데다 근로자의 손재주도 좋고 말이 같기 때문에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보다 우리 기업이 투자하기에 좋은 점이 많다고 합니다.최근 들어 기업인들이 북한에 들어가는 것도 그전보다 쉬워졌어요.

북한을 방문하려면 우리 통일부에 북한주민접촉 신청서를 내 허가받아야 하는 절차 등은 남아 있지만 경제협력을 위한 방북은 대부분 허용되고 있어요.

북한도 최근 북한에 투자를 원하는 국내 기업인에게 초청장(비자)을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우리 기업인들은 이 초청장을 들고 중국 베이징(北京)에 있는 북한 대사관으로 가 북한 입국 허가증을 받고 베이징에서 매주 두차례 평양을 오가는 북한 비행기(고려항공)편으로 북한에 들어갑니다.

북한에는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이란 단체가 남북경협의 창구 역할을 맡고 있는데,민경련 밑에 다시 삼천리총회사 등 정부가 운영하는 4개의 기업이 있습니다.방북 초청장도 대부분 민경련이 발급합니다.

북한과의 경제협력이 활발해지는 추세지만 아직 경제협력의 걸림돌도 적지 않습니다.국내 기업들이 북한에서 물건을 만들려 해도 공장의 시설이 낡아 대부분 우리 설비를 들여가거나 새로 지어야 합니다.특히 전기가 모자라 북한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이 공장을 가동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고 합니다.

또 물건을 실어 나르고 의사소통을 하는데 필요한 항만·도로·철도·통신 등과 같은 사회간접자본도 낙후돼 있습니다.

전화보급률을 예로 들어 볼까요. 북한은 인구 1백명 당 5명 꼴로 전화를 갖고 있습니다.우리가 두사람 중 한사람 꼴로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북한의 통신보급 수준이 낮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도로와 철도도 마찬가지예요. 관리할 돈이 모자라 곳곳이 패어 있거나 부실해 자동차나 기차가 제 속력을 내기 어렵다고 합니다.

북한의 SOC 재건 사업이 중요하고, 경의선 복원을 서두르는 것도 길이 먼저 뚫려야 사람이 오가거나 물건을 실어나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의선이 다시 연결되면 서울에서 기차를 타면 신의주에서 중국∼몽고를 거쳐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유럽까지 갈 수 있어요.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제품을 바다를 통해 유럽으로 보내는 것보다 운송료가 싸게 먹히고 운송기간도 20일이면 충분하지요. 또 러시아·중앙아시아 등으로 우리 수출시장을 더욱 빨리 넓힐 수 있는 등 경제적 실익이 큽니다.

우리 기술자나 설비가 이 기차를 통해 북한 공장으로 가고, 거기서 북한 인력을 활용해 물건을 만들면 생산 원가도 싸져 그만큼 경쟁력이 높아지게 됩니다. 북한도 생산기술을 익히고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우리 기업의 투자를 보장하고,세금을 이중으로 매기지 않는 것은 물론 서로 돈을 보내고 받는 시스템과 같은 제도적인 안전 장치가 필요한데 현재 남북한 당국이 협의 중입니다.

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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