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전망대] 환락에 젖은 상류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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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낮에 홍콩 관광에 나선 한 여행객이 안내원에게 물었다.

"거리에 미인이 별로 안 보이는군요. 왜 그렇죠?" 안내원이 대답했다.

"미인은 모두 벤츠 자동차 안에 있기 때문이죠. " 홍콩 상류사회의 끝없는 '미인 욕심' 을 풍자한 말이다.

그래서 홍콩에는 "딸이 미색이면 삼대(三代)는 걱정없다" 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밤에는 미인들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정답의 하나가 레이브(rave) 파티장(狂野派對場)이다.

홍콩 전역에 10여개가 있는 고급 레이브 파티장에는 주로 실업가와 부유층 자제, 유명 연예인들이 몰려든다.

이들은 화려한 보석과 고급 의상을 뽐내며 마음껏 환락을 즐긴다. 문제는 이들이 환각제를 상용한다는 점이다.

지난 28일엔 북한 나진.선봉지구에 카지노장을 개설한 홍콩 엠퍼러그룹(英皇集團) 앨버트 양 회장의 아들로 레이브계에서 '황태자' 로 통하는 길버트 양(楊其龍.29)이 쯔완(柴灣)지구에 있는 핑크 레이브 파티장에서 환각제와 마리화나를 소지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날 파티장에는 허차오충(何超瓊).룽원웨이(榮文尉) 등 유명 여배우는 물론 둥젠화(董建華)행정장관의 질녀인 둥리마오(董立茂)도 있었다.

쾌락을 향한 홍콩 상류층의 욕망은 그야말로 후안무치다.

바람둥이 실업가 류롼슝(42)은 지난 7일 1천만홍콩달러(약 15억원)의 돈을 내걸고 파티 파트너(名媛)를 공모했다.

부유층 자제들이 호화 클럽이나 요트에서 인기 연예인들과 집단으로 '쾌락 파티' 를 여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약물 복용이 상류층만의 문제는 아니다. 홍콩 오락협회와 홍콩경찰이 레이브 파티장이나 디스코장에 정기적으로 출입하는 12~24세의 젊은이 2백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3%가 마약류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홍콩 젊은이들이 쉽게 환각에 빠져드는 이유는 뭘까. '정치 부재의 사회' 에 대한 반발이란 분석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한가지는 분명하다.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홍콩이 환각제에 묻혀버릴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진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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