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영진위'가 부른 영화계 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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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내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문 한국 출품작 선정을 둘러싼 잡음이 점입가경이다. 지난달 24일 영화진흥위원회가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 감독)를 출품작으로 선정하자 '빈 집'(김기덕 감독) 측이 반발하며 시작된 이번 사태에 지난 주말 '올드보이'(박찬욱 감독)까지 가세했다.

'올드보이' 제작사인 쇼이스트는 "'올드보이'의 해외업무를 맡고 있는 씨네클릭 아시아가 출품신청을 안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2일 영진위에 신청서류를 냈다"며 "마감시한은 지났지만 영진위가 최종 발표를 4일로 미룬 만큼 선처를 요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씨네클릭 아시아는 '빈 집'의 공동 제작사이자 해외업무를 맡은 회사로 '빈 집'만 출품신청을 했다.

영진위 관계자는 3일 "서류 제출시간을 넘겼기 때문에 '올드보이'의 신청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올드보이'가 뒤늦게 서류를 내면서 혼란이 가중됐고, 이는 영진위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절차상 문제 없는 심사를 통해 출품작을 공식 발표했으면서도 탈락한 쪽이 반발한다는 이유로 아카데미 서류접수 시한(1일)을 4일(현지시간)로 연기하면서까지 출품작 선정을 미뤘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문 출품작 자격요건은 '9월까지 정상적으로 자국에서 개봉한 작품'이다. 지난달 22일 열린 추천작 심사에서 '빈 집'이 더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심사위원 5명 가운데 4명이 '빈 집'을 개봉작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고 이에 따라 영진위는 '태극기 휘날리며'를 추천작으로 골랐다.

'빈 집'은 추석 연휴 1개관에서 하루 한차례 상영했고, 공식 개봉은 이달 15일이다. 그러나 씨네클릭 아시아가 "자격에 아무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1주일이라도 9월 이전에 상영했다면 내후년 아카데미 출품자격이 없다"며 번복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일이 복잡해졌다.

영진위 관계자는 "결정을 뒤집을 뜻이 없다"면서도 "출품자격에 관한 아카데미의 명쾌한 답변을 듣기 위해 서류제출을 연기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결국 번복할 의사도 없으면서 무리하게 발표를 연기함으로써 소위 '잘나가는' 한국영화끼리 치고받는 코미디를 연출한 셈이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작은 세계 각국에서 한편씩 출품한 작품 가운데 총 5편이 선정되며, 지금까지 이 부문에 오른 한국영화는 없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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