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클럽] 러시아 대학생 나제쥐다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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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매우 감동적이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 남한사람과 북한 사람은 '역시 하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교관 양성기관으로 잘 알려진 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MGIMO)의 국제관계학과 4학년생인 모이세예바 발렌티노브나 나제쥐다(22)양.

녀가 서울에서 지켜본 남북 가족상봉의 느낌은 남다르다. 외교관인 아버지와 함께 1980년부터 88년까지의 어린시절을 평양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당시의 평양을 '거리는 깨끗하지만 아무도 자신에게 말을 걸지않았던 곳' 으로 기억한다.

다만 가을에 갔었던 금강산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면서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세번째. 92년 말 아버지와 석달간의 체류에 이어 97년에는 삼성전자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고려대에서 석달간 한국어를 익혔다.

올해 한-러 수교 10주년을 맞아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李仁浩)이 추진한 '러시아 대학생 한국어 특별연수 프로그램' 에 선발된 나제쥐다양은 지난 6월 22일부터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모스크바 국립대 등 4개 명문대학의 학생 24명과 함께 6개월간 한국어와 한국의 문화를 익히고 있다.

하루 4시간의 듣기, 말하기, 읽기와 쓰기 수업이 끝나면 PC방으로 달려가 모스크바에 있는 부모님과 남자친구에게 e-메일로 안부를 전하는 등 그녀의 하루는 24시간이 모자랄 정도.

"초현대식 건물과 고궁이 공존하는 서울과 '객지에선 밥을 많이 먹어야 돼' 라고 끝끝내 더 먹기를 권하는 한국 친구들의 부모님 로부터 한국의 미와 한국인의 정을 차츰 깨달아가는 것 같아요. "

나제쥐다는 친구들과 지리산 등반, 한국어 노래자랑, 강남역과 압구정동 탐방, 김치 만들기 등 벌써 많은 경험을 했지만 우연히 알게된 한복점 여주인으로부터 한복 한벌을 선사받은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한국학생들은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합니다. 방학 때도 휴일도, 심지어는 시험이 끝난 날도 다시 도서관을 찾아요. 반면 러시아에서는 방학이 되면 학교문을 닫기 때문에 대부분의 친구들이 여행을 떠납니다. 많은 경험을 해보겠다는 거지요. 어느 것이 좋은 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

그녀는 "러시아에서는 외국인에게 천천히 말해주는데 한국 사람들은 그런 배려가 별로 없다" 면서 "이런 것도 '어떤 일이든 빨리빨리하려는' 한국인의 조급증이 반영된 것 같다" 고 진단했다.

관료적인 외교관 생활보다는 사업에 흥미를 갖고 있다는 그녀는 "삼성이나 LG같은 한국의 대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후 남한과 북한, 러시아의 세 나라를 오가면서 무역일을 한번 해보고 싶다" 고 포부를 밝혔다.

글.사진〓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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