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민주당대회의 원초적 결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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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번에 있을 민주당의 전당대회는 참으로 예사스럽지 않은 시점에서 치러진다.의료대란.현대사태.남북관계 등 우리사회를 지탱해 온 가장 기본적인 축이 무너지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의구심이 크게 확산되고 있는 때다.

너무 빠르게 변해서 정부가 미처 상황제어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두려움마저 일고 있다.

변화를 미처 소화해내기 벅차다는 하소연이다.이런 때 집권당이 전당대회를 통해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고 시대상황의 변화를 반영해 집권 이데올로기를 정비하고 정책사업을 수정.보완해 나간다면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모순적 상황이 불러오는 갈등은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당권의 담임세력을 새롭게 구축하는 경우 정부에 대한 피로감을 씻어내고 활력과 기대에 넘치는 새 출발을 다짐할 수도 있다.바로 며칠 전에 있었던 미국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바로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의 전당대회는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고조된 가운데 치러져야 제격이다.그러나 우리나라 민주당의 전당대회는 일반 국민은 고사하고 자기당의 당원에게조차 활력과 희망을 심어주지 못한다고 해서 고민인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의 민주당 전당대회는 원초적으로 불구다.우선 지나치게 최고위원 경선에 경도된 나머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당의 이념체계나 정책사업을 당의 저변에서부터 결집해내는 작업이 경시됐다.

당연히 당원의 자기 의사표현과 정책적 요구 표출 창구가 차단되는 결과를 낳았다.참여를 통해 풀어야 할 변혁과정의 응어리가 그대로 남게 된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1993년 이후 처음으로 당 지도부의 경선이 허용됐다고는 하나 이는 일종의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당권의 핵심인 당총재 자리나 그의 관리인이라고 할 수 있는 대표최고위원 자리는 그냥두고 당권의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최고위원만 경선한대서야 어디 당권의 향배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겠는가.

아무리 경선이 뜨겁다고는 하지만 찻잔 속의 태풍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이번의 경선에는 또 표리부동한 점마저 있다.경선 결과가 차기대권이나 당권승계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당총재가 천명했다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믿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가 과열되고 혼탁해지는 것 아니겠는가.아니 일의 속성상 처음부터 무관할 수 없는 일이다.선거 과열이 지나쳐 경선주자들로 하여금 대의원 접촉을 금했다지만 이것도 이미 사문화한 지 오래라는 전언이다.

도대체 당원의 총의를 결집하자는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접촉이 차단된다면 그런 전당대회가 겨냥하는 목표는 과연 무엇일까 . 경선이 무조건 당선자만 내면 되는 통과의례는 아니지 않은가.

선거전이 상대방 후보에 대한 비방과 지역감정 자극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도 우리 정치의 타락을 원형 그대로 닮은 꼴이다.심지어 경선 결과를 사실상 사전에 조정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하니, 민주주의의 표상이라고 해야 할 정당 내부 선거치고는 본말이 전도돼도 한참 전도됐다.

사정이 이 지경이니 집권당의 전당대회를 통해 우리 정치의 퇴락을 씻고 국정운영에 새로운 기풍을 불어넣기는 처음부터 틀렸다.민주당이 국정운영의 중심에 서서 격변과 도전의 시대를 견인해 나가기는 어렵게 됐다.아니 우리 정치의 현주소에서 민주당 자신의 개혁과 변화 이상 시급한 과제가 없음을 웅변해 주는 꼴이다.

다행히 일부 경선주자들 사이에는 청정선거운동도 있는 모양이다.그러나 이번의 전당대회에 내포해 있는 원초적 불구를 시정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정치적인 노력도 허사일 뿐이다.민주당의 본질문제에 해당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경선과정의 표리부동성도 시정돼야 마땅하다.그리하여 우리정치에도 희망이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이런 때 권력에 안주하고자 한다면 그런 정치지도자들에게 미래가 있을 수 있을까.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의회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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