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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군 조 편성 ‘합동제설’ 90㎝ 폭설에도 끄떡없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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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경북 울릉군이 독일 벤츠사에 의뢰해 제작한 제설차량. 산악도로에서도 다닐 수 있는 이 차량은 제작비와 운반비를 합쳐 한 대에 5억원이다. 울릉군은 큰눈이 오면 울릉읍과 서면·북면에 한 대씩 있는 이 제설차를 24시간 운행해 눈을 치운다. [울릉군 제공]

울릉도는 지금 섬 전체가 눈으로 하얗게 뒤덮여 있다. 새해 첫날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7일까지 계속됐다. 이날까지 울릉도에 내린 적설량은 90㎝를 기록했다.

그렇지만 울릉도의 시내버스와 택시는 끄떡없이 운행하고 있다. 올 들어 단 하루도 마비되지 않았다. 트럭·승용차 등 개인 차량도 체인을 감고 별 문제 없이 다닌다. 울릉도의 중심가인 울릉읍내 도로와 간선도로인 섬 일주도로는 벌써 제설 작업이 끝났다. 25㎝ 눈에 도심 교통이 마비된 서울과는 전혀 딴판이다.

울릉도가 이처럼 큰 눈에도 끄떡없는 것은 연례행사처럼 대설이 되풀이돼 대처법이 훈련돼 있기 때문이다. 제설 작업에는 민·관·군이 따로 없다.

큰 눈이 내리면 가장 먼저 투입되는 것은 울릉읍과 서면·북면에 한 대씩 있는 제설차다. 지난해 말 사들인 제설차는 독일 벤츠사에 특수 제작을 의뢰한 5억원짜리로 산악도로에서 성능이 뛰어나다. 제설차는 읍·면 소재지 도로와 일주도로를 다니며 먼저 눈을 치운다. 24시간 작업한다. 간선도로가 뚫려야 시내버스·택시 등 대중교통이 마비되지 않기 때문이다. 택시는 모두 4륜구동 갤로퍼여서 제설만 되면 운행에 큰 문제가 없다.

울릉군은 큰 눈이 오면 케이블방송을 통해 ‘내 집 앞 눈은 스스로 치우자’는 자막을 내보낸다. 제설차가 들어갈 수 없는 작은 도로에는 건설업체 등에 연락해 포클레인을 동원한다. 공공근로 인력도 도로별로 투입된다. 군청 등 공공기관은 필요한 최소인력을 빼고 대부분 조를 편성해 제설작업에 동참한다. 의용소방대와 군부대도 나선다.

주민들도 집 주변의 눈을 스스로 치운다. 눈을 치우지 않고는 집 밖으로 나서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울릉군 박진동(51) 민방위재난 담당은 “대응 매뉴얼이 없어도 울릉도 주민 대부분이 큰 눈이 오면 스스로 집 앞 눈을 치운다”며 “최근에는 공공근로 인력 70여 명이 제설 작업에서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스스로 큰 눈에 대처하는 생활에도 익숙하다. 눈이 오면 과거엔 설피라는 신발을 신었지만 요즘은 등산화에 아이젠을 부착하거나 장화를 신는다.

쇠가 박힌 낚시용 갯바위신발을 신는 주민들도 있다. 출퇴근 길이 멀고 험한 공무원 등은 큰 눈이 오고 강풍이 부는 겨울에는 아예 여관을 잡거나 사택에서 자취생활을 한다. 현재 북면사무소 사택에 울릉읍에 사는 공무원 7명이 묵고 있다. 사택 생활을 하는 북면 이진열(52) 부면장은 “집을 다녀온 지가 보름쯤 된다”며 “길도 위험하고 주민들과 눈 치우는 일 등으로 바빠 당분간은 계속 머무를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민 이수길(50)씨는 “큰 눈이 오면 제설작업이 힘들지만 주민들은 눈을 원망하지 않는다”며 “울릉도 사람들은 겨울이면 봄 가뭄을 막아줄 큰 눈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울릉도 주민들에게 큰 눈은 반가운 손님이기도 한 것이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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