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남기고 싶지않은 이야기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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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 나라에서 장관 하기란 매우 어렵다.

장관 되기도 어렵지만 되고 나서 하기는 더 어렵고 하고 나서 잘 지내기는 훨씬 더 어렵다.'변방 수령' 이 아닌 요직 장관일수록 더 그렇다.

퇴임후가 더 힘든 장관들

5공 때 재무장관.부총리를 지냈던 어느 인사는 퇴임 후 서둘러 외국에 직장을 구해 떠났다.격(格)이 좀 낮아 "나라 체면이 뭐가 되느냐" 는 비판이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딸의 혼사(婚事) 때도 귀국하지 않아 그가 가장 믿는 후배 관료가 신부 입장 때 아버지 노릇을 대신했다.딸의 혼사뿐 아니라 재무장관.부총리 시절의 '기밀문서' 한 박스도 가장 믿는 그 후배 관료에게 맡겼다.

훗날 정권이 바뀌어 5공 때의 부실기업 정리와 관련해 혹시 자신에 대한 사법처리 등이 불거지면 모르되 그 전에는 절대 공개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재직 시절 '곰바우' 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결벽에 가까운 청렴으로 유명했고 그 때문에 부총리까지 올랐던 그였지만, 이처럼 퇴임 후의 처신에 대해 그는 누가 묻기도 전에 모르쇠로 일관했고 스스로 외국에 나가 오랫동안 국내 일과는 철저히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런가 하면 6공 때 재무장관을 지냈던 다른 인사는 본인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오랜 기간 유배에 가까운 외국생활을 해야 했다.

일찍부터 YS 집권을 내다보고 퇴임 후에 대해 용의주도한 준비를 했으나 정권이 바뀌면서 잠시 외국에 느긋하게 쉬러 나가 있던 차에 YS의 '과거청산' 과는 무관한 금융부실 수사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유탄(流彈)' 을 맞은 탓이었다.

'마당발' 소리를 들을 만큼 교분이 넓고 권력의 핵심과도 긴밀했던 그였지만 재직 시절 험한 세상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던 것이 끝내 퇴임 후 그의 발목을 잡는 '지뢰' 가 됐던 것이다.

우리나라 전직 장관들은 이처럼 퇴임 후가 더 어렵지만 다들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재직 시절 있었던 일들에 대해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것이다.보신에 철저하든 아니든 다들 마찬가지다. 갖고 가야 할 비밀들이 많고 살아 생전에 부닥칠 사람들이 워낙 많아 회고록 쓸 생각은 아예 안한다.

김정렴(金正濂)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회고록이나 강경식(姜慶植) 전 부총리의 환란(換亂)기록 등 드문 예외가 있긴 하나, 예컨대 중앙일보의 장기 연재물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에 전직 고위 관료들을 등장시키려 섭외를 하면 다들 한사코 거절한다.

미국의 전직 장관들이 회고록을 쓰고 여기 저기 다니며 강연을 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미국이 회고록의 나라라면 한국은 '모르쇠' 또는 "내가 입을 열면 많은 사람이 다친다" 는 나라다.

하기야 역대 대통령들이 망명하거나 시해(弑害)당하거나 아니면 치죄(治罪)당한 나라에서, 그래서 대통령 기념관 하나 없는 나라에서, 요직에 있던 장관이 퇴임 후 어찌 입을 열어 진솔한 회고록을 쓰겠는가.

회고록다운 회고록 써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르윈스키 스캔들로 한참 시달릴 때 미국 사회에선 "퇴임 후 회고록을 쓰지 못할 최초의 대통령이 될 것" 이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클린턴은 이미 특별검사의 수사를 다 받았고 최근엔 참회까지 했다.현직 대통령의 허물을 다 들춰낼 정도의 사회이니 클린턴도 퇴임 후 회고록 못쓸 이유가 없고 어쩌면 그의 회고록은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4.13 총선과 8.7 개각으로 DJ 정권에서도 많은 전직 장관들이 나왔다.이들은 여느 때의 퇴임장관들과 다르다.

그들 중 몇몇은 환란 이후의 경제를 이끌고 왔던 사람들이고 그들의 경험과 기록.회고는 우리의 귀중한 역사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산을 '환란재판' 때처럼 검사(檢事)들이 판단할 것이 아니라 학자.후배관료들이 평가하고 토론하고 보완해 더욱 귀중한 학습자료로 남기고 활용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통령부터 먼저 진솔한 회고록을 쓸 수 있어야 하겠지만.

김수길 경제담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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