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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상누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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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의미 있게 설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지난 10여 년을 냉철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 달러를 넘은 해는 1995년이고 지난해엔 2만 달러 부근까지 증가했다. 그동안 1997년에는 외환위기,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다. 두 번의 커다란 격랑에도 침몰하지 않고 한국호가 성장의 항해를 계속할 수 있었던 원인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각고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운도 좋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자화자찬 속에서도 우리가 냉철하게 보아야 할 대목은 모든 경제주체들이 당면한 ‘부채 증가’라는 문제다. 부채의 증가는 지금 당장 일반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 한국 경제를 나락으로 빠뜨릴 수 있는 암적 존재가 어두운 곳에서 자라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1인당 GDP가 2배로 증가하는 동안 각종 경제주체들의 부채는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 국가채무는 61조원에서 366조원(예상)으로 6배 증가했다. GDP 대비 비율로는 20.7%포인트나 증가했다. 공식적으로 국가채무에 포함되고 있진 않지만 한국적인 상황에서 볼 때 국가채무와 공공부문의 부채는 유사성이 적지 않다고 할 것이다. 2002년 이후 6년 만에 공기업 부채는 173조원이 늘어났다. 알리오사이트에 따르면 공공기관 부채는 2004년 이후 4년 만에 265조원이 증가했다. 만약 공식적인 정부채무와 공공기관의 부채를 단순히 합치면 2008년을 기준으로 GDP의 87.3%에 달한다. 공공부문의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기우가 아닌 것이다.

1인당 GDP가 2배가 되는 동안 개인부문 부채도 급증했다. 금액으로는 무려 647조원이 증가하고, GDP 대비 비율은 31.7%포인트 증가했다. 개인부문 부채증가액은 동 기간 중 GDP 증가분의 99.3%에 달한다. 기업부문도 녹록지 않다. 민간기업의 부채는 2002년 이후 6년 만에 금액으로는 무려 1115조원이 증가하고 GDP 대비 비율로는 57.0%포인트가 늘었다.

물론 모든 부채의 증가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경제가 성장하고 금융의 역할이 커지면서 부채는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부채에 대한 차입이자율보다 부채로부터 높은 투자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면 부채의 증가는 바람직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정부나 공공부문의 경우에서 차입이자율을 웃도는 투자수익률을 기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개인부문의 부채증가는 부동산 관련 대출과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사업 관련 부채의 증가를 의미한다. 이러한 부채증가가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제고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기업들의 부채비율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체 민간기업의 부채증가는 잘나가는 대기업 외에 다른 기업들의 부채가 급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지난 10여 년간의 한국 경제 성장은 빚 위에 세워진 ‘빚상누각’일 가능성이 크다. 모래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보다 빚더미 위에 세워진 빚상누각이 더 위험할 수 있다. 공공부문의 부채증가는 후세의 돈을 빌려 쓴 것이다. 개인부문의 부채증가는 외부 충격에 민감한 나약한 체질로의 추락을 의미한다. 벌써 위험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경제성장률보다 민간소비의 변동률이 더욱 커져서 경제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살아있으되 살아있다고 할 수 없는 좀비기업이 사방에 퍼져 있다. 정부·개인·기업이 부담하는 이자만도 GDP의 20%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의 각종 경제주체들은 소득이나 수입보다 소비나 지출이 더 많았고 부족한 부분은 빚으로 충당했다. 내실보다 빚을 내 외형을 확장하는 데 골몰했던 것이다. 새로운 10년이 시작되는 지금 우리 모두 빚상누각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빚상누각을 탈출하려는 노력이 계속될 때 우리가 그리는 꿈들이 단순히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