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 강국 보인다 - <3> 틈새시장 노려라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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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일동제약 연구소의 한 연구원이 세포배양기를 통해 히알루론산 생산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일동제약 제공]

지난해 9월 서울 장안동과 마곡동의 물재생센터(옛 하수처리장) 두 곳의 현대화 사업을 국내 환경 전문업체인 부강테크가 맡았다. 프랑스 베올리아 등 외국 기업이 싹쓸이하던 하수처리 분야에 국산 토종회사가 ‘깜짝’ 진출한 것이다. 이 회사는 최근 바이오기술(BT)과 환경기술(ET)을 융합한 바이오가스 플랜트 사업도 벌인다. 오물을 분리한 뒤 이를 발효시켜 바이오가스(메탄)를 뽑아내고 이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사업이다. 지난해엔 유럽기업에 120만 달러를 받고 핵심 기술을 수출했다. 정일호 회장은 “BT 없는 그린 테크놀로지는 생각하기 힘들다”며 “크지 않은 시장이지만 바이오가스 생산효율이 좋아 추가 구매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로봇전문업체인 NT리서치는 수술용 로봇을 개발해 한양대병원에서 임상시험 중이다. 인간의 팔과 닮은 이 로봇은 6개의 관절축을 갖고 다양한 수술도구를 부착할 수 있다. 이비인후과와 안과에서 쓸 수 있는 미세수술 로봇으로, 뇌종양 제거와 같은 정교한 수술도 가능하다. 로봇기술을 바이오 영역인 의료기기와 접목한 것이다.

이처럼 BT와 융합을 통해 신사업을 개척하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 특히 경쟁이 심한 국내 시장을 벗어나 글로벌 무대를 겨냥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공통점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김현한 연구원은 “전체 산업에서 BT가 주체가 돼 정보기술(IT)이나 나노기술(NT)과 융합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며 “국내 기업들이 단순히 기술을 보유하는 단계를 넘어 융합을 통해 산업화로 이어가려는 움직임이 확연하다”고 말했다.

BT·융합은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BT의 한 갈래인 농업과 IT를 융합한 빌딩농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7월 LG CNS는 전북 전주시와 ‘생물산업 육성을 위한 협약’을 맺고, 빌딩농장 운영시스템 개발 연구에 착수했다. 빌딩농장은 도심 고층의 유리온실 빌딩에서 친환경 농산물을 연중 생산할 수 있어, 도시에 사는 소비자에게 신속하게 공급하고 운송과 보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정보기술(IT)과 바이오기술의 한 갈래인 농업의 융합이 진행 중인 빌딩농장의 개념도. 농장은 로봇공학·센싱·중앙관제·모바일 원격제어 등 IT 기반 기술이 필수적이다. 가뭄과 홍수 등 천재지변에 상관없이 고부가가치 농산물을 안정된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어 성장가능성이 크다. [버티컬팜닷컴 제공]

빌딩농장은 1990년대 미국 컬럼비아대 딕슨 디포미어 교수가 제안했다. 미국에선 올해 라스베이거스에 30층 규모의 ‘스카이팜’이 준공될 예정이고, 캐나다에선 토론토에 58층 규모의 빌딩농장 건립을 추진 중이다. 국내에서도 경기도 남양주시가 2012년 세계유기농대회에 맞춰 로봇을 이용한 ‘무인 빌딩농장’을 세울 예정이다.

빌딩농장 완전 자동화엔 IT의 역할이 크다. IT 솔루션을 이용해 온도·조명·탄산가스·배양액 등의 환경조건을 최적의 상태로 제어한다. 모바일 기술을 통한 유비쿼터스 관리환경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빌딩농장 설비제어를 가능하게 한다. 농사 패러다임이 삽과 호미를 들고 농작물을 생산하던 방식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마우스 혹은 모바일 기기 조작 환경으로 바뀐 것이다. LG CNS의 박진국 공공·SOC 사업본부장은 “빌딩농장 사업모델은 그동안 IT 기술을 적용하기 어려웠던 농업 영역에 대한 시도”라며 “그동안 쌓아온 IT핵심 솔루션을 빌딩농장에 적용해 국내 사업기반을 다지고 해외시장 진출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동제약은 발효기술의 강점을 앞세워 뷰티산업과의 융합을 노린다. 뷰티산업은 정부도 미용과 화장품 등 관련 산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할 정도로 성장가능성이 큰 영역이다. 이를 위해 일동제약은 최근 히알루론산 생산기술을 확보했다. 히알루론산은 안과용 점안제나 슬관절 주사제, 조직 간 유착방지제 등으로 쓰이며, 특히 성형용 필러의 주요 원료다. 조직 보충용 제제인 필러는 얼굴 윤곽 개선 등을 목적으로 피부나 피하지방층에 주입하는 물질이다. 히알루론산은 전 세계적으로 2조5000억원 시장을 형성한다. 일동제약은 4월 본격 생산에 들어갈 수 있도록 충북 청주공장에 생산시설을 구축 중이다.

강재훈 일동제약 연구소장은 “기존 히알루론산 생산방식에 비해 효율이 30% 이상 높아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다”며 “수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신약을 개발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진입장벽이 낮은 틈새시장에서 선두에 오른 회사들이 많아지면 한국도 바이오 강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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