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기획·탐사기사] 끝. <가작> 아나운서 시험은 미인대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중앙일보가 주최한 제3회 대학생 기획.탐사기사 공모전에서 각각 가작과 장려상에 당선된 2편의 기사를 소개합니다. 가작인 '아나운서 시험은 미인선발대회?'는 외모지상주의에 멍든 아나운서 선발과정을, 장려상인 '정치와 분단된 캠퍼스'는 갈수록 정치에 무관심해져 가는 대학가의 세태를 다뤘습니다. 필자들과의 협의를 거쳐 요약문을 게재하며, 전문은 인터넷 중앙일보(www.joongang.co.kr)의 '이슈.기획'난에 실었습니다.

"학교 수업 후 아카데미 학원에 가서 발성.발음.호흡.스피치.리포팅 등을 배웁니다. 그뿐인가요? 피부미용실에 가서 정기적으로 피부관리를 받아야 합니다. 다이어트는 기본이죠." 올 하반기 방송국 아나운서 공채 시험을 볼 계획인 S씨(24.E여대 영상학과 4년)는 하루가 분주하다. 학교 공부에 취업 준비, 거기다 외모 관리까지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나름대로 철저하게 준비해 왔다고 자부했지만, 얼마 전 치렀던 기상캐스터 시험에서 고배를 마셨다.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는데 아무래도 외모 탓인 것 같아요. 아나운서 역시 외모가 최고의 조건인데 걱정이에요."

'아나운서 시험은 미인선발대회?' 전문

서울 신촌에 있는 유명 아나운서 전문 아카데미에서 만난 한 20대 여성은 "아나운서 시험 합격을 위해 2년 넘게 준비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토플.토익에서 고득점했고 국어.상식.논술을 꾸준히 공부한 그는 현재 카메라 테스트 등 실기시험을 위해 300여만원의 비용을 들여 6개월째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경을 쓴 부분은 외모 관리다. "성형수술과 피부관리 비용까지 합하면 1000만원이 넘게 들었다"고 했다.

여성뿐 아니다. 지방대 졸업 후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는 K씨(27)는 "외적 조건이 중요해 남자도 성형수술에 탈모 관리까지 한다"고 귀띔했다.

아나운서 준비생들은 아나운서 선발과정 자체가 외모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외모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아나운서 시험은 1차 서류전형에 이어 2차로 시사상식에 대한 필기시험을 치르는데 상식 책과 신문을 열심히 본 사람이라면 다 맞힐 수 있는 수준이다. 그 후 세 차례 시험은 모두 면접으로 발음.억양과 함께 외모를 크게 따진다. 그래서 아나운서 아카데미 관계자들은 지망자들에게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외모부터 냉철히 따져보라"고 요구한다.

취재팀이 지난 7월 12~18일 서울지역 남녀 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아나운서 선발에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다수(87%)가 외모를 꼽았다. 직업적성(8%), 목소리.학력.외국어 능력 등 기타 요건(5%)을 든 숫자는 극히 미미했다. 이에 대해 방송아카데미 아나운서 과정 담당자 김광민씨는 "아나운서 준비생들의 외모 가꾸기는 사회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시청자들은 뉴스 채널을 고를 때 아나운서의 얼굴로 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외모 중심의 아나운서 선발체제는 아나운서의 수명을 재촉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그러다보니 국내 여자 아나운서 중 57세 정년을 채운 사람은 아직 하나도 없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이 중 40세를 넘긴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다. 얼굴로 발탁됐다가 바로 그 얼굴 때문에 밀려나는 것이다.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아나운서가 되자마자 9시 뉴스 등 간판 TV 프로그램들이 내게 몰렸다. 그때는 중요한 프로그램을 도맡아 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결혼을 하고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돌이켜 보면, 뭘 알고 방송을 했었는지 모르겠다. 지금에서야 방송이 뭔지 알겠다. 그러나 이제 그런 프로그램들은 더 이상 내게 주어지지 않는다." 한 30대 여자 아나운서는 '방송의 꽃'으로 불리는 여자 아나운서들의 처지를 이같이 털어놨다.

강성곤 KBS 아나운서협의회장(숙명여대 겸임교수)은 "아나운서들이 교양.도덕성.지적 능력.전문 분야.세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갖출 때 오래 갈 수 있고, 제대로 된 자기만의 프로그램을 가질 수 있다"고 역설했다.

지난 7월 초 스페인으로 연수를 떠난 손미나 KBS 아나운서의 말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비디오 시대에 외모는 물론 중요한 요소죠. 하지만 성형수술로 예쁘게 만든 얼굴보다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외모가 장기적으로 활동하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그는 "스페인에선 60세 할머니 아나운서가 시청자들의 지지 속에 뉴스를 진행한다"며 "시청자들의 사고도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은미 이화여대 언론정보학 전공
진명구 한양대 법학과

<dew-one@hanmail.net>

<당선소감>

▶ 진명구(왼쪽)·노은미씨

***외모지상주의 '씁쓸'

아나운서 지망생에 관한 기사를 꼭 한번 다루고 싶었다. 가까이 있는 친구와 선배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토록 간절하게 아나운서가 되려는 이유가 뭔지, 정작 아나운서가 된 이들은 직업에 만족하는지가 궁금했다. 취재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우리는 실력보다 외모 관리에 열을 올리는 아나운서 지망생들의 태도가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에서 비롯됐다는 걸 깨달았다. 씁쓸했다. 그동안 최선을 다했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고희의 한 무용수가 "무대에서 완벽하려 하지 마라. 남는 것은 추억이다"라고 했던 말로 자위를 해본다.'쓰는 기사'가 아니라 '읽히는 기사'로 거듭나고자 노력했던 것에 만족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