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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쿠르스크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생명이 바다에서 비롯했기 때문일까. 아득한 옛날부터 인간은 물속 깊이 들어가보고 싶어했다.

기원전 시대의 알렉산더 대왕은 바닷속에 대한 호기심이 대단해서 유리로 만든 잠수기구를 직접 타고 물속에 들어가기도 했다.

잠수함이 전투에서 최초로 실용화된 것은 미국 독립전쟁 때인 1776년으로 꼽힌다.

발명가 데이비드 부시넬이 독립군 사령관 조지 워싱턴의 부탁을 받고 만든 '거북(turtle)호' 가 뉴욕시를 봉쇄한 영국 군함을 물리치는 데 동원됐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개량을 거듭한 잠수함은 19세기 말에 이르러 군사적으로 쓸만해졌다.

특히 1910년께 디젤기관을 장착함으로써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각국의 전력(戰力)에서 확고한 위치를 굳혔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말기에 3대의 항공기를 이.착륙시킬 수 있는 3천5백t급 '잠수항공모함' 까지 개발했다.

잠수항모를 동원해 파나마 운하를 폭파함으로써 대서양 연합군 함대의 태평양 진입을 지연시킨다는 구상이었지만 원폭투하로 일찍 항복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잠수함의 최대 장점은 은밀성이다. 그러나 그 대가로 승무원들은 죽을 맛이다. 좁은 환경과 탁한 공기, 고온.고습.소음.진동은 '잠수함 의학' 까지 탄생시켰다.

'유(U)보트' '어비스' '유령' 같은 영화를 상기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54년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 '노틸러스호' 가 등장한 이래 적어도 미국 원자력 잠수함 내 환경은 샤워까지 즐길 정도로 좋아졌다.

이에 비해 전통적으로 미사일에 맞춰 잠수함을 설계해 온 러시아 잠수함들은 상대적으로 열악하다고 알려졌다.

승무원 1백18명을 태운 러시아 원자력잠수함 쿠르스크호가 노르웨이 북쪽 바렌츠해에서 침몰한 지 1주일이다.

영국.노르웨이 구조대가 지원에 나섰지만 상당수 승무원은 선내 폭발이나 산소부족.추위로 숨졌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해 3월 우리 해군 해난구조대(SSU)가 거제도 남방 해상에서 침몰한 북한 반잠수정을 인양할 당시 수심은 1백50m였다. 이 깊이에서의 인양 성공은 세계기록이다.

쿠르스크호는 약 1백m 해저에 가라앉아 있다. 무게가 무려 1만4천t이니 잠수정 인양작업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발군의 심해구조능력을 자랑하는 우리 해군이 거듦직하지 않을까.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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