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 장기수 62명 내달 북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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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분단과 냉전의 격랑 속에서 보내온 반세기. 다음달 초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돌아가는 비전향 장기수 62명은 감회와 회한 속에 귀환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남한에서 가정을 꾸렸거나 노모를 모시고 살았던 장기수들은 또다시 생이별을 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 귀환 준비〓18일 오전 10시30분쯤 비전향 장기수들이 모여 사는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한백의 집' .홍문신(洪文臣.80).장호(張虎.81)씨 등 네명이 선물꾸러미를 싸며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張씨는 "이건 아들놈, 이건 며느리에게 주려고 챙겼어. 할망구는 죽었을 것 같아 준비를 안했지…" 라며 웃었다.

올 초부터 대전시에서 형제건강원을 운영 중인 최선묵(崔善默.72)씨 등 대전.충남 지역 장기수 6명은 21일부터 2박3일간 제주도 여행을 떠난다.

사회단체와 개인 등의 선물도 답지하고 있다. 지난 7일 새마을운동 광주서구지회는 비전향 장기수 8명을 초청, 환송연을 열고 여행용 가방을 증정했다.

이어 12일 광주시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환송행사에서는 구두가게 주인이 구두 한켤레씩을, 광주시 서구 축구연합회는 '통일 시계' 를 전달했다.

◇ 생이별〓62명 가운데 10여명은 또다시 남측 가족과 헤어져야 한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 우리탕제원에 사는 申인영(71)씨는 31년간 옥바라지를 했던 어머니(93)와의 이별이 한에 맺히는 듯 울먹였다.

암 투병 중인 申씨는 "북에 두고온 아내와 자식을 만나게 됐지만 어머니를 두고 떠나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고 말했다.

1993년 석방된 뒤 결혼한 김명수(79.충남 논산시)씨는 "부인(76)과 함께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며 발을 굴렀다.

광주의 빛고을탕제원에서 일하는 김영태(金永泰.69)씨는 94년부터 동거하고 있는 尹모(51.여)씨와 이별해야 할 처지다.

비전향 장기수 송환추진위원회는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장기수들이 남한 가족들과 함께 북으로 갈 수 있도록 해달라" 고 정부에 촉구했다.

◇ 혈육찾기 청탁〓전국 10곳의 장기수 거주 시설엔 하루 20여명의 이산가족들이 "혈육에게 전해달라" 며 편지와 사진 등을 보내오고 있다.

최근 비전향 장기수의 애환을 담은 수필집 '새는 앉는 곳마다 깃을 남긴다' 를 출간한 김동기(金東起.68)씨는 50여명으로부터 편지와 전화 부탁을 받았다. 여류시인 서영순(58)씨는 자신의 시집을 6.25 때 월북한 아버지에게 전해 달라며 부쳐왔다.

전국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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