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뇌성마비 1급 구족화가 김경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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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왼발의 꿈 - .

뇌성마비 1급인 구족화가 김경아(金京雅.32.여)씨. 16일 오전 서울 송파구민회관 작업실 한 구석에서 열심히 붓을 놀리고 있는 '그녀의 왼발' 엔 삶에 대한 강한 집념이 서려 있었다.

"태어나서 한달쯤 됐을까, 감기가 걸렸는데 증상이 갑자기 악화돼 병원에 가보니 이미 늦었다는 거에요. " 더듬더듬, 알아들을 듯 말듯 그는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아홉살 때 이웃집 언니에게서 처음 글을 배웠는데 연필을 감아쥔 왼발에서 감각이 느껴지더라구요.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지요. "

이때부터 그녀의 발가락에선 크레파스와 색연필이 떠나질 않았다. 각종 장애인 그림대회에서 입선하는 등 소질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한계가 너무나 뚜렷했다. 그림은 그려서 뭐하나 하고 절망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마음속에서 붓을 놓기를 여러 번. 그러던 중 1992년 여름 서울 노원구 상계동 뇌성마비복지관 동양화반에 들어가면서 '평생 그림을 그리겠노라' 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해 성탄절, 부모님께 카드 대신 난을 친 화선지 한 장을 선물했다. 그 밑엔 그가 발로 쓴 짤막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아버지, 저도 할 수 있어요. " 이후 가족들의 전폭적인 성원 속에 지금까지 8년 동안 체계적인 동양화 지도를 받아 왔다.

또 97년부터는 화사랑 장애인 그림동우회에도 가입해 일주일에 세번씩 서양화를 배우고 있다.

金씨에게 서양화를 가르쳐 주고 있는 김정현(金正賢.29)씨는 "붓을 잡으면 땀을 비오듯 쏟아가며 그림에 집중하곤 한다" 며 "감각도 탁월하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은 오히려 정상인이 본받아야 할 정도" 라고 말했다.

유일하게 감각이 남아 있는 왼발로 그는 이도 닦고 옷가지도 정리하며 포크질도 자유자재로 한다. 최근엔 컴퓨터로 채팅과 e-메일 주고받기에 푹 빠져 있다.

지금까지 그린 작품은 모두 1백여점. 각종 전시회에 10여차례나 참가했을 정도로 실력도 수준급이다. 이날도 오는 11월 화사랑 전시회에 내놓을 작품을 구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가 가장 아끼는 그림인 '소녀의 얼굴' 은 88년부터 그리기 시작해 지난달에야 비로소 완성했다. 그는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예쁘게 미소지을 수 있겠죠" 라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구족화가협회에서 정식 화가로 인정도 받고 운보 김기창 화백처럼 장애를 훌륭하게 극복한 화가로도 기억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 어눌한 말투. 하지만 진정 커다랗고도 간절한 꿈을 키워가고 있음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글.사진〓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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