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상봉] 남편 북 아내에게 반지 빼준 남 아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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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북의 아내 金옥순(74)씨와 아들.딸을 만나러 간 李재걸(76.서울 서초구 서초동)씨. 그의 남쪽 아내 禹선지(64)씨는 북의 아내를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둘째며느리가 생일 선물로 사준 세돈쭝 금반지를 깨끗이 닦아 남편의 선물꾸러미에 함께 넣은 것이다.

연신 "미안하다" 고 말하는 남편에게 禹씨는 "만나자마자 북쪽 부인에게 반지부터 끼워주라" 고 당부했다. IMF로 금모으기를 할 때도 내놓지 않고 간직해온 반지였다.

禹씨는 李씨를 중매로 만나 스물하나에 결혼했다. 몇년 뒤에야 함남 흥원군이 고향인 남편이 북에서 결혼했다가 1.4후퇴 때 가족들을 두고 내려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북의 처가 살아 있다는 사실도 최근에 확인했다. 禹씨는 처음엔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李씨에게 "결혼 후 3년밖에 못살고 헤어져 혼자 두남매를 키웠다는데 얼른 만나러 가 한을 풀어주라" 고 말했다.

禹씨는 금반지.시계.속옷.우산.약품.사탕.손톱깎이 등 20여가지가 넘는 선물 보따리도 손수 꾸렸다. 그러나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방북한 남편이 며칠간 집을 비우는 동안 禹씨는 두통.치통에 시달렸다.

禹씨는 "나는 대범한 줄 알았는데 마음 한구석이 뭔가 이상해. 자꾸 머리가 아파 약을 두번인가 지어먹고 바깥 출입도 안했어" 라며 아픈 속을 털어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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