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오자와와 세배정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요즘 오자와의 위세는 하늘을 찌른다. 예산은 물론이요, 당 운영·선거 문제까지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계가 그의 표정,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된다. 지난달 민주당 국회의원 140여 명을 포함해 600여 명의 수행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 것도 오자와가 정권 실세임을 국내외에 천명한 행사였다.

3김 시대를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세배문화’는 사실 일본에서 시작된 것이다. 전후 일본을 장악한 자민당 정권의 중요한 정치적 결정은 국회나 총리관저보다는 매일 아침 파벌 총수의 집에서 열리는 조찬모임에서 이뤄지곤 했다. 새해에는 총수의 집에 모여 덕담과 함께 한 해 지침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권력과 자본의 유착에서 오는 금권정치, 이념이나 정책의 차별성보다는 인맥으로 얽힌 파벌정치가 끊이지 않았다. 금권과 파벌정치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 오자와의 정치 스승이다. 오자와의 정치 스타일이 옛 자민당 정치와 오버랩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1985년 1월 1일. 다나카 전 총리의 도쿄 메지로다이(目白台) 자택에는 650여 명의 의원과 지지자들이 방문했다. 다나카가 뇌경색으로 쓰러지기 두 달 전, 야미쇼군(闇將軍·막후 실력자)으로 맞은 마지막 설날이었다. 동네 초밥집이 배달한 초밥만 200인분. 이날 신년 하례회는 일본의 낡은 파벌정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벤트로 기록되고 있다. 다나카는 84년 4월엔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당시 대장상)의 부친상에 참석하면서 자신이 이끄는 파벌 소속 의원 70명을 포함한 국회의원 100여 명을 대동했다. 이를 위해 그는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시마네(島根)현 가케야마을(掛合町)까지 전세기를 띄웠다.

당시 록히드 재판 1심에서 실형 판결을 받고 항소 중이던 다나카는 전년도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둬 검찰·언론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지난해 총선을 승리로 이끈 오자와 간사장 역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비서들이 잇따라 기소되면서 현재 검찰·언론과 맞서고 있는 점에서 똑같다.

오자와는 신년회에서 “스스로(민주당)의 손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법안을 가결할 수 있는 힘이 중요하다”며 참의원 선거에서 단독 과반수 확보를 다짐했다.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자민당을 사실상 “해체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스승 다나카가 일으킨 자민당을 제자 오자와가 깨부수겠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세(勢)를 앞세운 오자와가 정치자금 스캔들과 참의원 선거를 어떻게 돌파할까. 올해 일본 정치의 최대 관전 포인트다.

박소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