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만해축전] 백담사 휘감아 돈 '님의침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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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많은 사람들이 이 깊은 산사를 찾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세속의 온갖 것들로부터 벗어나 또 하나의 나를 찾자는 것일까. 용대리에서부터 백담사까지 들어오는 짧은 시간 동안 시야의 모든 것은 저마다 고뇌를 떨쳐버리고 하나의 득도승이 된 양 오묘한 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아무런 꾸밈 없이 보여준다.

주위를 바라만 보아도 시 한 수가 절로 나올 것 같은 풍광, 그리고 부처가 된 소나무들이 그대로 한 편의 시다.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산이 된다는 것일까. 나무가 나무를 지우면 숲이 되고 숲이 숲을 지우면 산이 되는 것일까. 그 산마루마다 안개가 걸리고. 아무 것이나 함부로 나고 함부로 되지 않은 것 같은 나무와 돌, 그리고 바람소리.물소리. 모든 것들이 세속의 사람들에게는 오도송(悟道頌)처럼 들리는 백담사. 이곳에서 제2회 만해축전이 8일부터 12일까지 열렸다.

올해로 두번째 열리는 행사. 만해 한용운이 불후의 시집 "님의 침묵(沈默)" 을 집필한 설악산 백담사에서 7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치러졌다.

첫째날 전국고교생 백일장과 시인학교 개교를 시작으로 만해축전 입재식과 만해상 시상식이 이어졌다.

이번 만해상 수상자로는 실천상에 리영희(한양대 명예교수), 평화상에 스티브 린튼(유진벨재단 이사장), 시문학상에 오세영(시인.서울대 교수), 학술상에 신용하(서울대 교수), 예술상에 신응수(중요무형문화재 74호 대목장), 포교상에 사단법인 '좋은 벗들' (이사장 법륜 스님)이 수상했다.

만해축전에는 고은(대회장).신경림.민영.이근배 시인과 소설가 이문구(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씨, 시조시인 장순하씨 등 전국의 문인 1백여명이 참석했다.

시상식에는 이수성 전 국무총리.손학규 의원.김진선 강원도지사를 비롯해 강원지역 기관장들도 참석했다.

그리고 이 행사의 이벤트로 '백담의 소리와 춤' 공연에 이어 부채춤.사물놀이.장구춤.진도북춤 등 다양한 행사가 치러졌다.

셋째날에는 '불교의 개혁사상과 만해의 개혁정신' 이란 주제로 불교개혁 심포지엄이 열렸다.

그리고 이어 오늘의 시조학회(회장 윤금초)주관으로 '21세기 현대시조와 새로운 서정' 이란 주제의 시조문학 심포지엄이 열렸다.

첫 주제 발표자인 김대행(서울대)교수는 '따뜻한 법어(法語)에 이르는 길-제2회 만해시문학상 수상 시조시인 정완영론' 에서 이시인의 근원에 얹힌 고향 생각처럼 따뜻한 마음을 통해 소리도 보이고, 세상 사는 일도 보이고, 그래서 보이는 것만 말해도 물안개의 정(情)이 피어오른다는 시세계를 조명했다.

문학평론가 신범순씨는 현대시조의 탈정형화 움직임을 경계하면서 "시조의 정형 속에 스며 있는 오랜 철학적 이념을, 사라진 것으로서가 아니라 부활돼야 할 것으로 생각할 때 현대시조의 존속 근거가 된다" 고 강조했다.

마지막 날 치른 '마지막 밤을 내설악 어둠과 별과 물소리와 함께' 라는 프로그램은 만해 축전의 백미였다.

백담사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와 모두 부처의 형상을 한 것처럼 보이는 돌멩이들까지도 아슴푸레하게 비치는 달빛 아래 세속의 때를 훌훌 벗어던지고 있었다.

가을로 이어지는 밤의 둥근달은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 또는 저마다 자신들의 소원을 담아 돌탑을 쌓고 있는 사람들을 비추며 "나는 과연 이곳에 와서 무엇을 떨쳐버리고, 그 빈그릇에 무엇을 담아가야 하는가" 를 묻고 있었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 이라 했던 만해 한용운. 지금 저 중생들은 이곳에 무엇을 기리고자 천불의 돌탑을 쌓고 있는가.

백담사〓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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