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난 몰라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수천년 이어져온 농경시대.산업사회의 낡은 껍질을 한꺼번에 깨뜨려버린 정서적 충격이었다."

1992년 90년대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서태지가 막 떠오를 때 80년대 진보운동의 상징 박노해 시인은 무기징역으로 교도소에 철커덩, 갇혔다.

독방에서 칙칙거리는 스피커로 처음 서태지 음악을 들은 박시인은 수천년 정서적 역사를 단숨에 바꿔버린 '문화혁명' 이라 했다.

서태지의 등장으로 그 이전과 이후는 확실히 구분됐다. 80년대 순정성 하나만으로 뭉쳐 저항하던 시인들이 흩어지는 등 문민정부의 등장과 함께 이념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버렸다.

80년대 문화와 지성의 주류를 이루던 이념이 사라진 공백을 포스트 담론이 한때 점거하더니 이내 모든 것이 상업주의에 함몰돼갔다.

이때 서태지는 기성세대에 대한 또다른 저항을 들고나온 것이다. 데뷔하며 선보인 랩과 힙합댄스는 신세대들의 감성과 욕망을 그대로 대변해줬다.

거기에 그친 것이 아니라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과 청소년의 가출문제도 담아냈다. 나아가 통일과 북방 대륙을 향한 민족의식까지 채찍질하며 도저한 상업주의마저 발 아래 둘 정도로 거대한 문화권력으로서 군림했다.

그 절정에서 서태지는 "팬들의 기억 속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고 싶다" 며 96년 미국으로 날아가버렸다.

여느 대통령 만나기보다 더 힘들게 꼭꼭 숨어살던 그가 11일 "좋은 음악이 만들어졌다는 판단이 들어 이번에 국내활동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고 인터넷을 통해 밝혔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걸음마와 함께 피아노를 쳤고 배우고자 하는 음악 분야를 가르치는 대학이 없어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는 서태지.

타고난 자질과 저항, 그리고 끊임없는 실험의식으로 만들어졌을 그의 '좋은 음악' 이 다시 대중을 휘어잡을 수 있을는지는 그러나 미지수다.

90년대의 신세대와 2000년대의 신세대는 분명 또 다를 것이나 무엇이 어떻게 얼마만큼 다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는 x세대니 n세대니 하며 세대를 자꾸 세분하면서 그들에게 뭔가를 팔려하며 또 거부해왔지 그들 세대의 특성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는 노력은 등한히 했다.

서태지의 컴백을 앞두고 90년대를 거쳐 지금까지 우리는 무엇에 홀린 듯 문화도 없이 그 시대만 황망하게 소비한 것은 아니냐는 회한도 그래서 앞선다.

이경철 문화부 차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