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확정자 분주한 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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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상봉자 명단에 포함됐다는 통보를 받은 이산가족들은 선물 품목을 정하기 위해 가족회의까지 여는 등 설렘 속에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상봉자보다 더 많은 탈락자 가족들은 또다시 분단의 고통을 곱씹어야 했다.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하기 위해 1943년 고향인 평북 선천을 떠나 이번에 북한땅을 밟는 박영일(朴英一.77.서울 양천구 목동)씨는 족보(族譜)를 선물로 챙겼다.

朴씨는 8일 가족회의를 열어 둘째 누나(78)와 남동생(65)에게 전해줄 선물 목록을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북한에 가지고 갈 가족사진을 촬영하고 가족들의 음성을 녹음할 계획도 있다.

○…1백9세 된 어머니와 만나게 될 장이윤(張二允.71.부산시 중구 영주동)씨는 귀고리.목걸이 등 패물과 한복.고무신.버선을 준비했다.

張씨는 "오마니는 유독 귀고리를 좋아하셔서 귀에 큰 구멍이 나 있었던 게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며 "오마니를 만나면 복스럽던 어머니 귀에 귀고리를 달아드리겠다" 고 말했다.

張씨는 상봉 충격에 어머니가 쓰러질 경우에 대비해 우황청심환도 구입했다.

○…인민군에 징집돼 부인과 아들을 평북 희천군에 두고온 최태현(70.인천시 부평구 부평2동)씨는 부인과 자신이 나눠 낄 쌍가락지를 준비했다.

崔씨는 "혼자 남아 시부모와 시동생 3명을 부양하고 자식을 키우며 한평생 고생했을 아내에게 미안한 심정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은 마음에 이 선물을 준비했다" 고 말했다.

○…고향인 평남 중화군 간동면에 딸 재춘(57)씨를 두고 1.4후퇴 때 남하한 임연환(83.대전시 대덕구 오정동)씨는 금반지를 준비했다.

임씨의 부인 채두숙(76)씨는 "딸에게 죄스러운 생각이 들어 금반지와 팔찌를 준비했다" 며 "이런 날이 올 때 쓰려고 IMF 금모으기 운동 때에도 이것만은 내놓지 않고 간직해 왔다" 고 말했다.

○…북한에서 결혼해 가족을 두고 남한으로 내려온 이선행(李善行.80.서울 중랑구 망우동).이송자(李松子.81)씨 부부는 패물.옷 등을 준비했다.

李씨는 "북한에서 결혼한 아내에게 금반지도 못해줬다" 며 "금반지로 가족을 돌보지 못한 데 대한 용서를 빌겠다" 고 말했다.

◇ 탈락소식 낙담〓상봉대상자에서 탈락한 이산가족들은 꿈에 그리던 가족들이 숨졌다는 소식에 한차례 울고, 생존한 친지들을 만날 수 없다는 현실에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부모와 누이 2명이 사망하고 조카 2명만 생존해 상봉대상자에서 탈락한 송등용(宋登龍.68)씨는 "이번엔 갈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게 됐다" 며 "조카를 만나 부모님 기일을 전해 듣고 제사라도 제대로 지내려 했는데…" 라며 아쉬워했다.

1.4후퇴 때 북에 두고 온 자녀 2명이 모두 숨진 것으로 확인돼 최종 명단에서 제외된 마순옥(73.여.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씨는 "자식들의 묘라도 찾아가 어미로서 용서 빌기를 희망했었다" 며 "다음에는 꼭 방문단에 포함돼 친척들로부터 가족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다" 고 말했다.

사회부 전국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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