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김정수, 주말 드라마로 첫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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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래저래 명승부다. 서민 드라마의 1인자로 통하는'전원일기'의 작가 김정수(55), '언어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김수현(61)씨. 이들이 주말 저녁 첫 맞대결을 벌인다. 김정수씨는 2일부터 방송되는 MBC '한강수타령'을, 김수현씨는 16일부터 전파를 탈 KBS2-TV '부모님 전상서'의 집필을 맡는다. 여기에 KBS와 MBC의 주말극 주도권 다툼, 김혜수(한강수타령)와 김희애(부모님 전상서)라는 두 스타의 자존심 대결이 더해진다.

"뒤틀림 없는 건강한 가족 그려"

"배신과 복수, 음모. 얽히고 설킨 애증. 요즘 드라마엔 뒤틀리고 비정상적인 구조와 사람들이 가득해요. 소중한 가치인 가족애는 실종돼 버렸고요. 이래도 될까요? 이번 드라마에선 망가지기 전, 장식 없고 가식 없는 우리의 모습을 그리고 싶어요."

'사랑과 진실''사랑이 뭐길래''청춘의 덫'…. 흥행에 관한 한 남부럽지 않은 전적을 가진 김수현씨지만 이번엔 어느 때보다 소명의식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는 최근 드라마들이 "걱정스럽다"고 잘라 말했다. 흥행코드를 차용해 비슷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너도나도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 극 중 가족관계가 파괴돼 무서울 지경이라고 했다. 김씨는 이번 작품을 통해 건강한 삶과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싶다고 말했다.

"시청률이란 오랜 부담을 털어버렸어요. 제게 무슨 큰 욕심이 있겠어요. 좋은 드라마 한 편 만들자고 방송사 측을 설득했고 공감을 얻어냈어요. 조미료 없는 무공해 드라마를 쓸 생각입니다. 자극이 적어 졸릴지는 모르지만요."

'부모님 전상서'는 그야말로 전통적인 의미의 홈 드라마. 이혼은 물론 자식까지 버리는 세태가 난무하는 요즘 자폐아 아들을 외롭게 키워가는 여인(김희애)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역설한다. 동시에 결혼의 의미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또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부모.자식간의 조건 없는 사랑과 믿음을 따뜻하게 그린다.

"이번 드라마엔 특이하게 주연이 없어요. 김희애씨? 아닙니다. 시골학교 교감(송재호)가족 등 모든 인물이 주축입니다. 초점은 가족간 사랑이지 자폐아를 둘러싼 갈등이 아닙니다. 일부에서 취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행히 연출자인 정을영 PD와는 '목욕탕집 남자들''불꽃''내 사랑 누굴까'등에서 호흡을 맞춰 와 주제를 표현하는 데 이견이 없다고 한다.

아무리 성적을 초월했다고 해도 승부란 누구에게나 피곤한 일. 그도 이 점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김정수 작가가 나보고 무섭다는데)사실 내가 무서워요. 뛰어난 작가인데다 MBC까지 총력을 다하잖아요. 좋은 작품으로 시청자들을 만족시키는, 건전한 경쟁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상복 기자 <jizhe@joongang.co.kr>

*** 김수현은…

▶ 1943년 충북 청주 출생 ^65년 고려대 국문과 졸업 ^주요 작품: '사랑과 진실'(84년) '사랑과 야망'(87)'배반의 장미'(90) '사랑이 뭐길래'(92)'목욕탕집 남자들'(95) '청춘의 덫'(99, 78년) '불꽃'(2000)'내 사랑 누굴까'(2002)'완전한 사랑'(2003)

"가슴 뭉클한 엄마와 딸 속얘기"

"대학생 조카에게 '동방신기 너무 멋있더라'고 말하니까 '그게 뭐예요?'하고 묻더라고요."

까르르 웃음소리가 소녀같다. "늘 TV를 보니까 웬만한 연예인은 다 안다"면서 "드라마는 '파리의 연인'을 참 재밌게 봤다"는 이 사람. 25년 동안 '전원일기''그대 그리고 나''파도''그 여자네 집' 등 속 깊고 잔잔한 드라마들로 진한 사람 냄새를 다정하게도 풍기던 김정수(55)작가가 맞나 싶다. 그러고 보니 '한강수타령'에도 김민선.박한별.봉태규.이윤지 등 장년층에겐 낯선 청춘 스타들이 여럿 출연한다.

"제가 트렌디 드라마를요? 분수를 알아야죠. 저는 그런 드라마 못 써요."

'전쟁과 사랑'(1995)을 쓴 뒤 '사람이 변신하면 안되겠구나' 깨달았단다. 그러니 한강수타령 역시 6남매의 장녀이자 맏며느리인 김 작가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가족끼리 서로 속을 긁으며 부대끼다가도 결국 부둥켜 안는 그런 이야기가 될 것이다.

"제 자식이 스물여섯, 스물여덟살이라 자연히 젊은 사람들 고민도 알게 되고, 청년 실업이며 결혼 얘기를 쓰게 되네요."

사위나 며느리가 생기면 관심이 또 옮아가지 않겠느냐며 웃음짓는다.

"(김수현 작가와의 맞대결이) 너무 겁난다. 살살 써달라고 세 번이나 부탁드렸는데 웃기만 하셨다"고 말하는 김 작가. 그래도 그가 시청률을 의식해 자극적인 장면을 넣거나 시청자 의견 때문에 드라마 내용을 바꾼 적은 없다. 김영애를 살려달라는 의견이 빗발치던 '파도' 때도, 박원숙과 최불암을 결혼시켜달라고 모두가 졸라대던 '그대 그리고 나'때도 그랬다. '기가 약해 흔들릴까봐' 아예 인터넷 게시판도 보지 않는단다.

"한강수타령은 엄마와 딸 얘기예요. 드라마 보고 나서 '엄마, 월요일에 냉면이나 한 그릇 먹을까?'하고 전화하고, 양말 한 켤레라도 엄마 손에 쥐어 주고 싶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전 돌아가신 친정엄마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고 미어지는데…기자님은 결혼하셨어요?"

열흘쯤 됐다는 말에 "에구, 새색시가 엄마 생각 많이 나겠네"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토닥인다. 그 따뜻한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번 주말부터는 그의 소박한 위로가 브라운관을 통해 수많은 엄마와 딸들을 찾아가 어루만질 것이다. 그들의 마음도 푸근해지리라.

구희령 기자 <idiny@joongang.co.kr>

*** 김정수는…

▶ 1949년 전남 여수 출생 ^72년 경희대 국문과 졸업 ^주요 작품: '전원일기'(81~93년, 백상예술대상.한국방송대상) '엄마의 바다'(93)'자반고등어'(96)'그대 그리고 나'(97.백상예술대상.한국방송대상) '파도'(99)'그여자네 집'(2001) '흐르는 강물처럼'(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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