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현장 이 문제] 중랑천 주변은 난개발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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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난 2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 한천초등학교 옆 재건축 아파트 건설 현장. 중랑천변 동부간선도로에서 불과 40여m 떨어진 부지에 최고 28층 높이의 아파트 20여개동 3천여 가구의 골조가 하늘을 찌를듯 솟아있다.

5층 짜리 시영 아파트를 허물고 짓고 있는 이 아파트 단지의 남북 직선 거리는 5백여m에 달해 마치 하천 옆에 병풍을 친 것 같다.

지금도 주변 도로에 차가 밀리는 판에 내년 입주가 이루어지면 교통 흐름이 더욱 느려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군데군데 아파트 숲으로 변한 중랑천 주변을 따라 고층 아파트들이 마구잡이로 계속 세워지고 있어 각종 도시문제 발생에 따른 주거여건 악화가 우려된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권영덕(權寧德)박사는 "60~7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때 저층 주택가가 형성됐던 중랑천 주변은 전망이 양호한데다 단독주택 밀집지와는 달리 개발에 따른 민원이 적어 90년대 이후 아파트들이 집중적으로 들어섰다" 고 말했다.

그는 "이에 따라 도심경관 파괴와 통풍 방해, 조망권 침해, 교통과밀 등 여러 문제가 생기고 있다" 고 진단했다.

◇ 우후죽순 세워지는 아파트=이미 중랑천을 직접 맞바라보고 세워진 아파트 단지는 52곳으로 4백41개동 4만5천여 가구에 달한다. 이가운데 민선 자치단체장이 출범한 1995년 이후 1백23개동 1만4천6백여 가구가 세워졌다. 또 현재 18개 단지(1백49동)에서 1만4천5백여 가구가 건설중이다.

올들어 사업승인이 난 다섯곳중 세곳이 '나홀로 아파트' 다.

도봉구청 관계자는 "고밀도 아파트 건설을 규제하는 도시계획조례 시행을 앞두고 재건축을 서둘러 신청하려는 주민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지고 있다" 고 말했다.

◇ 복합적인 원인=느슨한 법체계, 개발이익을 노린 주민들의 재건축 욕구와 이를 거절하지 못하는 민선 구청장들의 입장, 수주물량 극대화에 혈안이 된 건설업자들의 이해가 복합적으로 얽혀 마구잡이 개발이 이루어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중랑천 주변은 '88 서울올림픽' 을 전후해 2백50%였던 용적률이 3백%로 완화됐고 노태우(盧泰愚)정부의 주택 2백만호 건설 정책 이후 4백%까지 크게 늘었다. 90년대 중반 다시 3백%로 환원됐으나 고밀 개발이 한창 진행된 뒤였다.

전문가들은 주거의 쾌적성이 보장되는 적정 개발과 고층.고밀화가 불가피한 마구잡이 개발의 용적률 경계를 2백%선으로 보고있다. 이를 초과할 경우 마구잡이 개발을 법이 허용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서울대 안건혁(安建爀)교수는 "같은 용적률이더라도 중랑천 주변처럼 전체가 아파트로 뒤덮인 지역은 드문드문 아파트가 있는 지역에 비해 훨씬 도시문제가 심각하다" 고 말했다.

너도나도 요구하는 재건축.재개발 신청을 그대로 받아주는 구청들의 행정처리도 문제다. 구청이 세수(稅收)증대도 겨냥, 형식적인 요건을 갖출 경우 주거여건상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아무런 제한 없이 사업승인을 내주다 보니 재건축 등을 부추기는 악순환 마저 생기고 있다.

더우기 3백 가구 미만이거나 15층 이하의 아파트단지에 대해서는 서울시의 심의 등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구청에서 무사 통과되는 실정이다.

노원구청에서는 지난해 이후 10여건의 재건축 신청 가운데 한건도 거부되지 않았고 도봉구청도 올들어 3건을 모두 승인했다.

한 구청 관계자는 "주민들의 여론을 의식해야 하는 구청 입장에서 법적으로 하자없는 신청을 승인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고 귀띔했다.

◇ 뒤늦은 대책=서울시는 지난해 3월 '공동주택 건축심의 규정' 을 만들어 중랑천 주변 등에 대한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위해 건물 높이와 녹지 비율, 주차시설 등을 제한했다.

이에 따르면 중랑천 주변 아파트들이 지난친 위압감을 주지않고 북한산이나 도봉산, 수락산 등의 경관을 막지 않도록 아파트 벽채 면적(입면적) 등을 제한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90년대 후반 부터 내부적으로 이같은 규정은 운영해 왔다고 하나 중랑천 주변의 많은 지역들이 답답한 아파트 숲으로 바뀐뒤여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돼버렸다.

지난 15일 부터 시행되고 있는 도시계획조례도 개별적인 재건축을 방지하고 일정 구역안에서 주변과 조화되는 체계적인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지구단위계획' 개념을 도입했다. 하지만 실제로 중랑천 주변에 이 제도를 적용하기 까지는 상당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제도들이 10년전에만 시행됐더라면 지금과 같은 공룡 개발을 막을 수 있었을 것" 이라고 아쉬워했다.

◇ 열악한 환경=하천 주변에 병풍처럼 서있는 아파트들이 대기오염 물질을 가두는 벽역할을 할 것으로 우려된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權박사는 "서울 서쪽에서 이동해온 오염물질이 이지역에서 정체돼 대기상태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고 말했다.

또 하늘 높이 올라간 아파트들이 주택가 주민들의 조망권을 훼손하고 스카이 라인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동부간선도로를 자주 이용하는 鄭모(43.서울 노원구 중계동)씨는 "도로 대부분 구간에서 북한산 등을 볼 수 없다" 며 "스카이 라인도 직선으로 죽 이어져 마치 아파트 터널을 지나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고 말했다.

◇ 심각한 교통난=94년 개통한 동부간선도로는 몇년전까지만 해도 출.퇴근때 시원한 흐름을 보였으나 지금은 시속 10㎞ 정도로 뚝 떨어져 있다.

평일 오전 7시~10시 성수대교 방향은 거의 14㎞에 이르는 전구간이 주차장으로 변할 때가 많다.

이때문에 동일로.한천로.용마산로 등 남.북을 잇는 서울 동북부 간선도로들 연쇄적으로 정체를 빚어 동부간선도로 개통에 따른 교통소통 효과가 사라졌다.

姜모(39.서울 상계동)씨는 "매년 출퇴근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며 "교통 등 도시기반 시설의 확충없이 개발이 계속될 경우 주민들의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질 것" 이라고 말했다.

김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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