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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386'의 말 따로 행동 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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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6대 국회가 개원한 지 두달이 지났다. 많은 기대 속에 출범한 새 국회다. 그러나 초반 성적은 별로 좋지 않다는 평가다. 오히려 실망만 줬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그럴만도 하다. 틈만 나면 여야 격돌과 파행을 보이더니 마침내 지난달 24일 운영위에서 날치기 기록까지 세웠다. 16대 국회는 빠른 속도로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

여야를 이끌고 있는 각당 지도부와 중진들이야 어쩔 수 없다 치자. 상당수가 구정치의 주역으로 '헌 피' 인 그들에게 변화와 개혁에 앞장설 것을 요구하는 게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새 피' 인 초선들까지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국민들은 16대 국회에 무려 1백11명의 초선을 등원시켰다. 이 수는 전체 의원의 40.7%에 달한다. 집권당인 민주당(1백19석)의석에 버금가는 규모다. '바꿔 열풍' 으로 표현됐던 이같은 전폭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달라지지 않고 있다.

물론 초선의원들이 손놓고 있지는 않았다. 4.13총선때 " '썩은 정치' '낡은 정치' 를 확 바꿔놓겠다" 고 했던 이들은 여의도 입성 후인 지난 두달 동안 여러가지 신선하고 기대되는 약속과 다짐을 내놓았다.

입법부 바로서기를 위해 결론이 날 때까지 자유투표를 거듭하는 교황선출 방식으로 국회의장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조건 당론이나 권력에 따르는 거수기(擧手機)는 되지 않겠다며 소신투표(크로스 보팅)를 결의하기도 했다.

계보정치.패거리정치 배격과 국회에서 욕설.몸싸움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도 했다. 입만 열면 새 아이디어들을 쏟아냈다.

그렇지만 초선들은 결정적 순간에 철저한 줄서기 정치로 일관했다. 국회의장 선거와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표결에서 초선들은 일사불란하게 당명(黨命)을 따랐다.

눈에 뻔히 보이는 문제점들을 애써 외면했다. 총리임명동의안의 경우 "당론대로 투표할 거라면 인사청문회는 왜 했느냐" 는 질책도 받았다.

초선들은 상향식 공천, 당직 경선을 외치고도 각당 지도부가 총재의 결재서류 한장으로 당직과 국회직 인선을 끝냈을 때 군말없이 따랐다. 그래서 초선들은 그들이 비난했던 '거수기 의원' 들과 자신들의 차이점이 과연 있기는 한 것인지 헷갈리게 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날치기 소동 때는 격돌하는 여야 양진영의 선봉에서 몸을 날렸다. 정치적 장래가 촉망되는 '386꿈나무' 의원이 날치기 앞잡이를 하기도 했다.

일부 초선이 국회 방청석에 앉아 있는 것으로 난장판 정치에 대한 '소극적 저항' 을 했지만 그도 잠깐뿐 "뭣들 하고 있느냐" 는 고위 당직자의 호통에 즉각 몸싸움에 뛰어들어 보는 사람들을 안쓰럽게 했다.

초선들 가운데는 사회 각분야에서 일가를 이뤘거나 고위공직을 역임한 경력을 가진 경우가 적지 않다. 쟁쟁한 민주화 투쟁경력을 갖고 있는 의원들도 있다. 힘을 모으면 결코 간단치 않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면면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지금 한없이 무력하다.

하지만 아직 포기할 일은 아니다. 이제 16대 임기 48개월 가운데 두달이 지났을 뿐이다. 얼마든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지금부터는 말은 될 수 있으면 줄이고, 행동으로 소신을 관철하는 초선들이 많아져야 한다. 당리당략을 따지고 대권에만 집착하는 지도부의 횡포에 초선의 반란으로 맞서야 한다. 초선들이 분노해야 정치가 바뀐다.

김교준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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