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로 판단 마세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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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얼마 전 홍대역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초등학생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나와 친구는 아이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가 놀랄까봐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하려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부탁의 말을 하려고 하자 주변사람들은 일제히 도망가 버렸다. 마치 외계인을 만난 것처럼….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가끔 좌절한다. 외모가 달라 자신도 원하지 않는 주목을 받는 것이 한 가지 이유다. 나 역시 그런 일을 자주 겪는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흘끔거리거나 “외국 사람”이라고 속삭인다.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국 사람!”이라고 크게 소리친다. 한국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얼굴 생김에 관심을 갖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를 ‘외국 사람’이라고 부를 때 나는 이방인이란 소외감을 갖게 된다.

미국에서는 외국인을 그냥 ‘외국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고 ‘중국 사람, 인도 사람, 스페인 사람’이라고 분류해 부른다. 소수민족이나 여성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한다. 불쾌감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다. 예컨대 흑인을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 American)’이라고 부른다. 이런 배려는 다양한 민족과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미국 사회의 특징에 기인한다. 흔히 ‘정치적인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개념이 이에 해당하는데 이는 다양한 사람들을 사회 안에 동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이에 반해 한국 사람들은 외국 사람들을 단 하나의 카테고리로 나누는 것 같다.

물론 이런 태도는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때론 한국 사람들보다 더 솔직하다. 나는 한국에 오기 전 4년 동안 파리에서 지냈다. 프랑스에서 있던 어느 날, 버스에서 한 소년이 큰 소리로 나를 ‘미니 스시(mini sushi)’라고 불렀다. ‘작은 초밥’이라는 뜻이다. 너무 창피해 버스에서 내려버렸다. 프랑스에는 ‘정치적인 올바름’에 대한 문화가 없다. 소르본대학의 교수님도 나를 ‘라자티크(l’asiatique)’, 즉 아시아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화가 많이 났다. 미국에서 태어난 나는 인종 편견을 없애야 한다고 배워 왔다. 하지만 현실은 배움과 다른 면이 많았다.

내 어머니는 한국인이다. 어머니는 16세 때 미국으로 이민 갔고 미국인 아버지와 결혼했다. 나의 검은 머리카락과 올라간 눈을 보고 사람들은 부모님이 어디 출신인지 묻곤 한다. 평생 그런 말을 듣고 살았고, 그래서 언젠가는 어머니의 고향을 접하고 싶었다.

2년 전 인천공항에 처음 도착해 출구에서 나오자마자 마늘 냄새와 고춧가루 냄새가 풍겼다. 외할머니의 부엌에서처럼 기분 좋은 냄새였다. 난 어렸을 때부터 한국말을 들으며 자랐고 김치도 잘 먹기 때문에 어머니의 고향인 한국 사람들도 나를 잘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내 외모만으로 사람들은 나를 ‘외국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사람들은 내 얼굴에서 한국적인 특징을 좀처럼 찾아내지 못한다. 유대인이나 러시아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옷이나 피부·머리카락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자신들의 인상을 이야기한다. 외모나 감동을 표현하는 방법도 아주 달랐다. 한번은 한국인 친구가 내 얼굴을 보고 ‘주먹만 하다’고 말해 정말 당황했다. 내 얼굴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얼굴이 너무 작은지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 대한 고정관념은 ‘정이 많다’ ‘너무 바쁘다’이다. 하지만 성격이 다양한 한국 친구들과 사귀면서 그런 진부한 표현이 정확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한국 사람들은 참 다양하고 재미있다. 외국인도 마찬가지다. 점점 더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한국으로 오고 있다. 진정한 세계화를 위해선 ‘외국 사람’들의 개성과 다양성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재키 호만 연세어학당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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