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백경남 여성특위위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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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여성부 신설이 눈앞에 다가왔다.

국회 통과라는 마지막 과정을 앞두고 있는 여성부는 성차별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지위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 5월 9일 취임후 신설 여성부의 골격을 짜고 관계 부처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여성특별위원회 백경남 위원장을 만나 우리나라 여성의 현실과 전망을 들어봤다.

▶정부조직법이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채 막을 내리게돼 여성부 신설을 대비해온 위원장으로서 실망이 크시겠습니다.그러나 유일하게 여야가 합의한 사항이니만큼 전망은 어둡지 않을 것 같은데요.

-국회가 열리기만 하면 여성부 신설안은 통과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여야 모두 여성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만장 일치로 찬성을 표시하고 있으니까요.

▶현재 추진중인 여성부의 규모와 조직형태는 어떻게 돼 있습니까.

-1실 4국 17과와 여성정책위원회·남녀차별개선위원회·시민사회교육원로 구성됩니다.인원수는 최소 1백50명 이상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너무 규모가 작다는 의견도 있지만 규모보다 기능의 효율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여성청소년부로 하자는 일부 주장은 우리나라 여성문제의 현실을 무시한 채 규모에 집착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청소년문제가 더해지면 여성문제가 흐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실정을 감안하면 산적한 여성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규모면 된다고 생각합니다.규모가 커야 제대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시대 흐름을 무시한 구태의연한 발상입니다.

▶여성부를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 여성부가 생기면 다른 부서의 여성정책까지 모두 여성부에 떠넘겨져 결국 정부 각 기관의 여성정책이 약화될 것이란 우려를 하는데 각 부처와의 협력 조정관계는 어떻게 되는지요.

-여성부의 역할에 대해 미리부터 비관적일 필요는 없습니다.여성부의 가장 큰 역할중의 하나가 바로 정부 각 부처의 여성정책을 확대·조정하며 감독하는 기능입니다.또 최고 논의기구인 여성정책위원회는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주재하에 각 부처의 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로서 여기서 조정·논의된 여성정책은 각 부처에서 차질없이 시행될 것입니다.

▶정부가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제5공화국에서 여성개발원을 세우면서부터였지요.그후 정무 제2장관실에서 여성특별위원회를 거쳐 여성부로 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각 제도의 장단점을 비교해주시죠.

-그동안 여성 관련 조직은 많은 발전 과정을 겪어왔습니다.최초로 여성정책을 총괄했던 정무 제2장관실은 여성발전기본법·여성발전기금을 만드는 등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그리고 그후 여성특위가 생기면서 남녀차별금지 등이 본격화되기 시작했죠.하지만 새로운 시대를 맞아 많은 한계점이 드러남에 따라 기구를 확대·전문화할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특히 여성 정책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성폭력·남녀차별은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의식이 늘어나면서 여성특위라는 임시 기구만으로는 업무 수행에 한계가 나타났습니다.보다 전문적이고 다면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정부기구의 탄생이 필요하게 된거죠.

▶여성운동은 인간화 운동이라고 얘기합니다.동등한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인정하라는 것이죠.위원장께서 평가하기에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인간화는 몇 점이나 매길 수 있을까요.

-두말 할 것도 없이 낙제점이죠.여성을 남성과 똑같은 인간이 아닌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는 상태입니다.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별로 없어요.우리 사회의 경제력은 세계 11위이고,민주주의 능력은 아시아에서 알아주는 수준이지만 여성의 인권만 본다면 후진국이나 다름없습니다.하지만 인구의 절반인 여성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최근 보도된 환경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김시평 위원장의 성차별적 발언은 여성장관을 관료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준 단적인 예라고 하겠습니다.말하자면 여성은 장관이라도 ‘꽃’ 정도로만 여긴다는 식이지요.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정상에 오르기 힘든 것도 이런 이유가 큰 것 같습니다.우리 사회가 이런 편견을 언제쯤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의식변화에는 보통 3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합니다.독일의 경우도 정치경제적인 통일은 됐지만 의식의 통일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고 하지 않습니까.

사실 국제적으로도 여성의 인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기 시작한 것은 1975년 세계여성대회 이후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 수준에도 못 미치는 상태죠.글쎄요.요즘 워낙 인식의 변화속도가 빠르고 여성들의 자각이 커졌으니 좀 더 단축할 수 있을까요.

▶젊은 시절에 이희호 여사와 함께 여성운동에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당시와 현재 여성의 현실을 비교하신다면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1965년부터 2년간 여성문제연구회 연구간사로 활동했습니다.당시엔 재정부터 인적자원까지 모든 것이 황무지 상태였죠.여자가 대학을 간다는 것 자체가 희귀한 일이었으니까요.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여성 인적자원이 탄탄합니다.

대학을 가는 여성의 비율이 남성의 비율과 비슷하고 여성교수도 전체의 15%를 차지하고 있으며,언론계에도 14.5%의 여성들의 진출하지 않았습니까.하지만 취업을 원하는 대졸 여성의 45%만이 취업가능하다는 통계를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아직도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최근의 화두는 성희롱입니다.이제 여성들이 당한 사실을 쉬쉬하고 감추며 살아가기보다 응징하고 싶어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습니다.최근 롯데호텔 여직원들이 1백명 임직원을 고발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봐야 할 것 같아요.이런 여성들의 변화가 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사회 각 분야의 의식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지죠.또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여성들이 성희롱과 성차별이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당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하지만 아직도 성희롱 피해자가 여성특위에 신고하는 등 행동에 나서기는 쉽지 않습니다.

직장과 가정에서 또 다른 형태의 피해를 불러오기 때문입니다.꼭 말하고 싶은 것은 한 사람의 인권이란 지구의 무게만큼이나 크다는 것입니다.성이 차별받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비인간화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성차별은 이 시대의 고민이며 남녀 모두가 자신의 고민으로 생각하고 바라봐야 합니다.

▶꾸준한 여성운동의 결과로 우리 사회에서 제도적인 여성권익 신장은 상당한 수준에 달해있습니다.문제는 실천인데요.아직도 법 따로 현실 따로인 것이 많습니다.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여성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출발을 균등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지금처럼 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삶의 출발이 달라진다면 여성에 대한 편견의 극복이 더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출발에서 기회가 보장되지 않으면 그것을 만회하는 데 또다시 30년이 걸립니다.따라서 기회균등은 국가가 보장해줘야 하는 문제입니다.

특히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서 뒤쳐진다면 만회가 불가능한 것 아닙니까.또 국제적인 인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합니다.골프의 박세리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여성인재들을 육성해야죠.일부에서는 여성부가 왜 필요하냐고 하지만 여성 인력이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해 양성간의 평등사회가 이뤄지는 날,바로 여성부가 필요없는 그날을 위해 여성부가 필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성특위에서 여성부로 넘어가는 짧은 징검다리 기간에 위원장직을 맡아 더욱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그간 여성특위 활동에 대한 소감을 듣고 싶어요.혹시 여성부 초대장관으로 언질을 받으신 것은 아닙니까.

-제가 여성특위를 맡았을 당시 여성부 신설안을 두고 여성부·여성청소년부·여성처등의 여러가지 형태가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며 논의를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성부를 강력하게 밀고 나갔습니다.비유하자면 ‘세스나 전략’이죠.세스나는 가장 작고 가벼운 전투기입니다.하지만 그 작은 전투기가 크레믈린궁에 가서 동구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됐죠.이제 작고 효율적인 여성부의 출범은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권력구조가 해체되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제가 여성부 장관이 될까요? 그건 모르는 일이죠.제가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요.(웃음)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정리=박혜민 기자

[백경남 위원장 프로필]

▶1941년 전북 남원 출생

▶1959년 전주여상 졸업

▶1965년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1972년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학 석사

▶1977년 독일 뮌헨대학 국제정치학 박사

▶1978년∼현재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1999년∼현재 동국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장

▶1965년∼1967년 여성문제연구회 연구간사

▶1983년∼1987년 한국여성개발원 자문위원

▶1990년∼1992년 통일원 남북대화분과위원회 정책자문위원

▶1994년∼현재 아태평화재단 운영위원

▶1995년∼1996년 여성정책심의의원회 심의위원

▶1998년∼현재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간사위원

▶1999년∼현재 제3기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

저서:<한국여성정치론><민주주의와 공산주의><국제관계사><독일,분단에서 통일까지><이성적 사회를 위한 작은 이야기><독일의 길,한국의 길>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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