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벌개혁 제대로 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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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어제 경제장관 간담회를 열고 특히 기업 지배구조와 기업인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집중적으로 손을 대기로 했다.

금융불안의 시발점은 기업부실이고, 기업개혁과 금융개혁은 한국 경제가 풀어야 할 최대 현안들이란 점을 감안할 때 시의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최근 일부 재벌 오너들의 변칙 상속, 워크아웃 기업주들의 모럴 해저드, 내부자 거래.부실 회계처리 등으로 사회적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현대의 오너 패밀리간 갈등은 그룹경영은 물론 한국 경제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심지어 '한국의 기업구조조정은 겉치레에 불과하다' 는 지적이 나오면서 한국 경제의 신인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정도라 정부가 하반기 중 2단계 기업개혁을 강도높게 추진키로 한 것은 바람직한 수순이다.

기업인, 특히 재벌 오너들도 정부 계획에 적극 협조해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자신들도 살고 한국 경제도 산다.

그러나 어제 정부가 내놓은 계획에는 개운찮은 대목들이 일부 눈에 띈다. 특히 '관계기관 협조체제 구축' 을 유난히 강조한 정부 의도가 무엇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한때 실무자선에서 기업의 부당행위를 입체적으로 검사.조사하기 위해 검찰.경찰을 동원하는 것이 어떠냐는 발상이 나왔다는 보도와 관련된 것이 아닌지 긍금하다.

지금도 기업의 불법.부당행위를 제재하는 법과 제도는 숱하게 많다. 공정거래법.증권거래법이 있고 상호출자.상호지급보증도 제한 또는 금지되고 있다.

투명성 확보를 위해 결합재무제표 작성 등도 의무화하고 있으며 상속.증여에 대해서도 강한 법이 존재한다.

교묘한 수법으로 법망을 피해 재산을 빼돌리는 기업인.기업의 불공정 행위 등에는 이런 제도를 활용해 끝까지 추적, 세금을 추징해야 한다. 필요하면 법을 보완하고 민.형사상 책임까지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의 재벌개혁이나 기업구조조정이 처음부터 기업인, 특히 재벌을 범죄시하는 시각에서 출발해서는 곤란하다.

기업구조조정의 최종 목적은 바로 경제 활성화에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불합리한 부분을 바로잡고 이를 위해 각종 법.제도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해야지 애초부터 반목.갈등을 초래하는 쪽이 돼서는 안된다.

행여 일각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정부가 최근의 현대사태 등을 빌미로 '재벌 길들이기' 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는 극히 시대착오적인 발상일 뿐 아니라 자칫 경제활동을 더욱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금융정책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재벌.기업정책도 경제논리에 따른 정공법으로 나가야 하며, 그 방법도 정정당당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공감을 얻고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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