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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기획 - 금융의 삼성전자를 꿈꾼다 <2> 인도네시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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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외환위기 당시 동서증권 인도네시아법인 과장이었던 김희년 AITI인베스트먼트(벤처투자업체) 사장은 2002년 이트레이딩증권을 세워 인도네시아 온라인 주식거래 부문 1위 업체로 키워냈다. [이트레이딩증권 제공]

#1. 1865년 영국의 해운회사 직원으로 홍콩에서 근무하던 스코틀랜드인 토머스 서덜랜드(당시 31세)는 홍콩과 중국 상하이에서 은행을 설립했다. 홍콩과 중국 해안 지역에서 상당한 금융 수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은행업에 뛰어든 것이다. 영국의 세계적인 금융그룹 HSBC(홍콩상하이은행)는 이렇게 시작됐다. 아시아를 기반으로 성장한 HSBC는 1992년 영국의 미드랜드은행을 합병하면서 본사를 런던으로 옮겼다.

#2. 1998년 동서증권 인도네시아 법인에서 기업금융을 담당하던 김희년(당시 36세) 과장은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외환위기로 서울의 본사가 망했기 때문이다. 3개월간의 고민 끝에 그는 귀국을 포기하고 현지에 남아 사업을 하기로 했다. 부실채권 투자와 벤처사업으로 성공을 거둔 그는 2002년 평생의 꿈인 증권사 설립에 도전했다. 이름만 남은 현지 증권사를 50만 달러에 인수해 이트레이딩증권이란 간판을 달았다. 당시 인도네시아에선 없었던 온라인 증권거래를 처음 도입했다. 2005년부터 온라인 주식 거래가 늘기 시작했다. 지난해엔 전체 주식거래액의 4.5%를 차지하면서 업계 4위로 뛰어올랐다. 온라인 거래로만 50%의 점유율로 1위를 달린다.

지난해 12월 23일 자카르타 수디르만의 이트레이딩 본사에서 만난 이 회사의 김희년(48) 감사위원회 의장 겸 AITI인베스트먼트(이트레이딩의 최대주주) 사장은 선점 효과를 강조했다. 먼저 도전하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장점은 엄청나다는 것이다.

“당시 인도네시아에선 고객들이 실시간 종목 시세를 보기 위해선 따로 돈을 내야 했습니다. 이때 이트레이딩은 한국의 HTS(홈트레이딩시스템)를 들여와 실시간 시세를 보면서 주문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2003년 이 회사 고객이 된 소에라트만 도에라치만(에어아시아 인도네시아 고문)은 “종전엔 증권사 직원을 통해 거래를 하다 보니 매매 기회를 놓치는 일도 많았다”며 “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관심 종목의 시세를 파악하고 거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7년엔 한국의 대우증권(지분율 26.5%)과 일본의 아시아인베스트먼트사(14.12%)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한국과 일본 회사가 주요 주주가 되면 고객의 신뢰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우증권은 최신 HTS 기술을 이전해 줬다. 대우증권 이영창 경영지원본부장(상무)은 “인도네시아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증시 규모가 커지면 이트레이딩증권도 크게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보기술(IT)과 투자은행(IB) 분야에 대한 협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트레이딩증권은 현재 인도네시아 전역에 28개의 지점을 두고 있다. 올해 매달 두 개의 점포를 추가해 50개로 늘리고 3년 안에 100개로 확장한다는 목표다. 한국의 온라인 증권사는 지점이 많지 않다. 하지만 이트레이딩은 한국과는 다른 전략을 썼다. 인터넷 보급률이 높지 않은 인도네시아에서 온라인 증권거래의 장점을 알리고 사용법을 교육하려면 뭔가 거점이 필요했다. 이곳에서 영업을 하고, 투자설명회도 열었다. 지점망은 김 사장의 다른 꿈을 실현할 기반이기도 하다.

“온라인 증권만을 생각하고 지점을 낸 것은 아닙니다. 이곳을 기반으로 펀드를 팔 생각입니다. 언젠가 온라인 은행 설립이 허용된다면 이곳에서 실명 확인이나 통장 개설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의 꿈은 온라인 증권거래를 넘어 e금융을 향하고 있다. HSBC처럼 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일단 그의 목표는 인도네시아에서 e금융 사업의 기반을 닦은 뒤 다른 동남아 국가로 진출하는 것이다.

경쟁사들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이트레이딩의 급성장을 본 10여 곳의 현지 증권사도 속속 온라인 증권거래를 도입하고 있다. 0.25% 수준이었던 거래 수수료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경쟁력을 지키려면 새로운 서비스를 내놔야 한다. 김 사장은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한국의 신문과 경제 잡지를 꼼꼼히 챙겨 읽는다. 광고도 그에겐 좋은 정보다. 아무래도 한국이 인도네시아보다 앞서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제 머릿속엔 인도네시아에서 10년 동안 할 사업 목록이 10개쯤 들어 있어요. 한국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많죠. 하지만 너무 빨리 시도하면 안 됩니다. 타이밍을 잡는 게 중요하죠.”

그는 2~3년 뒤 이트레이딩을 증시에 상장할 생각이다. 인도네시아 증시에 상장할 수도 있지만, 가치를 잘 쳐준다면 한국 증시로 올 수도 있다고 했다.

◆특별취재팀=김준현(베트남·캄보디아), 김원배(인도네시아), 김영훈(미국), 조민근(중국), 박현영(인도·홍콩), 한애란(두바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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