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의 필사노력이 2만5천명 구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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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25일 파리 북부 고네스 마을에 추락한 콩코드기 사고 이후 프랑스와 독일에선 희생자들을 기리는 애도 속에 한 영웅에 대한 감사와 칭송이 물결치고 있다.

'그의 필사적인 노력이 30초 사이에 2만5천명의 생명을 구했다'. 자기 땅에 비행기가 떨어진 프랑스와 탑승객 1백명 중 96명이 자국민인 독일 언론들은 1면 머릿기사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양국 언론이 동시에 지목한 영웅은 샤를 드골 공항을 이륙한 뒤 불과 2분 만에 추락한 콩코드기 조종사 크리스티앙 마티(54.).

목격자들이 증언하는 마티의 영웅담은 감동적이다. 콩코드기는 이륙하자 곧바로 엔진에 불이 붙었다. 무려 60m가 넘는 거대한 화염이 엔진 뒤쪽으로 뿜어져 나오면서 비행기는 휘청거리며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바로 아래는 고네스 마을의 중심가였다. 1백85t의 거대한 불덩어리 콩코드기가 시속 3백60㎞로 떨어지는 추락 지점엔 병원이 있었다.

불과 몇초만 지나면 아비규환의 지옥이 연출될 상황이었다. 기적은 그때 일어났다. 콩코드기는 안간힘을 쓰며 가까스로 기수를 올렸다.

그리고는 필사적으로 도심을 빠져나갔다. 콩코드기는 다시 고속도로를 향해 추락해 갔다. 오후 4시55분의 고속도로는 퇴근길 차로 꽉 차 있었다.

콩코드기는 또 한 차례 거대한 동체를 뒤틀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벌판으로 향했다. 벌판 위에는 시골 호텔 한채가 있었다.

콩코드기는 사력을 다해 본관 건물을 피했지만 힘을 다한듯 한 사람의 투숙객이 머물고 있던 호텔 별관과 충돌했다.

엔진 화재에서 추락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0초. 사고기를 몰았던 조종사 마티가 얼마나 헌신적인 노력을 했을지를 아는 동료 비행사들은 눈물을 쏟았다.

이날 사고로 비행기에 타고 있던 승객과 승무원 1백9명은 모두 숨졌다. 그러나 지상에 있던 희생자는 불과 네명이었다.

"그는 우리 마을을 구한 영웅이다. " 콩코드기가 떨어지는 과정을 목격한 운전사 장 마리 알렉상드르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마티는 콩코드기가 탄생한 바로 그해인 1969년 스물셋의 나이로 조종사가 됐다. 30년간 에어버스 등 여객기를 몰다 지난해 모든 조종사의 꿈이라는 콩코드기 조종 자격을 따냈다.

운동광이던 마티는 또 윈드서핑으로 대서양을 횡단한 첫 프랑스인이었고 자전거와 등산을 즐겼다. 조종사 마티의 묘비엔 이제 '마을을 구한 영웅' 의 칭호가 주어질 것 같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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