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관치금융 퇴치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은행 파업사태가 싱겁게 끝났다. 한 열흘 지속됐더라면 시장의 힘으로 은행구조조정이 상당히 진척될 뻔했다.

정부와 금융노조가 머리를 맞대고 파업사태 수습을 서두르면서 관치금융을 없애는 방편이랍시고 총리훈령을 제정하기로 했다.

그것으로 관치금융이 근절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금융기관의 설립.경영 등을 완전히 시장기구에 맡기고 정부는 상관하지 않는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이것은 일반 상품시장과 달리 금융시장은 정보의 공유가 어렵다는 특성 때문이다. 은행은 속속들이 알 수 없는 기업고객을 상대로 대출한다. 간혹 기업은 부실회계자료를 갖고 거래은행을 기만한다. 예금자도 경영내용을 잘 모르는 은행을 상대로 계좌를 튼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의 건전성 규제.예금자보호 등 정부의 시장개입이 논리적 근거를 갖게 된다.

우리가 말하는 '관치금융' 은 정부의 금융시장 개입을 주로 부정적 시각에서 포괄적으로 표현한다. 따지고 보면 정부의 금융시장 개입.관치금융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복합돼 있다.

첫째 유형은 정부가 추진하는 산업정책을 지원하는 금융이다. 지난 고도성장기에 정부가 경제발전 전략에 따라 선정한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특수은행은 물론 일반은행까지도 동원한 '정책금융' 또는 '지시금융' 이 지배적이었다.

그 결과 실물부문은 확대 발전했고 금융부문은 낙후됐다고 비판하는 1980년대의 금융자유화 논의가 열기를 띠었고 근래에는 본격적 정책금융이 거의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유형은 비자금 조성을 위한 정치권의 대출압력.관료들의 입김 등 금융기관 여신에 대한 영향력이다.

전직 대통령 측근의 비자금, 과거 금융황제들의 전횡 등 때문에 일반국민이 관치금융이란 말과 연상시키는 유형이 바로 이것이다. 이는 이미 근절됐다고 말하기엔 시기상조일 것이다.

셋째, 금융감독과 관련된 유형이다. 금융감독은 다양한 업무를 포괄한다.

여기에는 금융기관의 설립ㆍ합병 등 인가업무, 건전성 규제업무, 검사업무, 문제기관에 대한 제재업무, 금융분쟁조정 등 기타업무가 포함된다.

다시 건전성 규제는 채무의 인수ㆍ보증, 경영지도기준 설정ㆍ자산건전화 등 경영지도, 동일인 여신한도 등 편중여신, 조기시정조치, 공시, 내부경영, 소유구조 등을 다루는 넓은 개념이다.

따라서 금융감독의 올바른 좌표는 건전성 규제를 투명하고 적절하게 유지함으로써 금융기관의 자율성 경영을 살리고 그 부실을 예방하고 금융제도의 안정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는 바람직한 정부개입이다.

넷째, 관료가 건전성 규제권한을 남용해 금융기관 자율경영을 불투명한 방법으로 후퇴시키는 유형이다.

과거 관행에 젖어 제가 하는 행위가 관치임을 깨닫지 못하는 관료들이 위기상황하의 건전성 규제를 빙자해 조직.인사.자산운용 등 은행경영에 사실상 깊숙이 개입한다.

환란 이후 정부지분이 전무한 민간은행에까지 만연하고 있는 관치금융이 바로 이것이다. 문서도 남기지 않으려고 전화통지 만으로 자행되고 있다. 각종 불이익의 후환이 두려워 시시비비를 가릴 배짱있는 은행원을 보호할 장치가 없다.

앞의 얘기가 사실에 근접한다면 앞으로 관치금융 근절은 주로 감독권 남용과 여신관련 압력에 집중돼야 할 것이다. 여기에 입법애로가 있다.

결국 다음 세가지 기본해결책이 유효할 것으로 기대된다. 첫째, 금융감독기구가 은행건전성 강화에 상반된 기능을 하고 있으므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금감위 업무는 건전성 규제로 한정하고, 구조조정과 시장안정화 등 업무는 타 부서에 이관해 상호 견제하도록 개편해야 한다.

둘째, 은행 내부경영에 대한 그릇된 정부간섭 사례신고를 접수.처리하고, 신고자(기관)를 보호하는 기구를 한시적으로 설치할 필요가 있다.

셋째, 실질적 민영화를 정착해 주주의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

이제 금융구조조정의 마지막 기회가 눈 앞에 있다. 정부, 여야당, 금융기관 종사자들의 대오각성이 있어야 한국 금융이 바로 선다.

김병주 <서강대 교수.경제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