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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기획·탐사기사 : 우수작] 대학 간 학점교류제 7년째 'F학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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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골프나 수영 강의를 우리 학교에서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학점도 따고 운동도 할 수 있으니 좋잖아요?"

안동대 정보통신학과 조모(23)군은 2학기 수강신청을 하면서 실망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조군은 스포츠 강좌가 개설되기를 바랐지만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담 없는 대학교육을 꿈꾼다 전문

강릉대 관광경영학과 박모(24)군도 수강신청 때 고민하기는 마찬가지다. "경영학에 대해 좀더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고 싶은데, 우리 학교에는 심층 과목이 별로 없어요."

대학생이라면 수강신청을 앞두고 한 번쯤 했을 법한 고민이다. 듣고 싶은 과목이 있는데도 대학이 제공하는 강의는 한정돼 있다. 그러다보니 적성 개발에 한계가 있고, 원하는 강의를 듣지 못하는 데서 오는 박탈감도 크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대학 간 학점교류제다. 학점교류제는 타 대학에서 취득한 학점을 인정해 주는 것으로, 대학 간에 학생과 강의를 교류해 열린 교육을 추구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1997년 시작된 학점교류제는 현재 전국 대부분의 대학이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학교의 무관심, 까다로운 신청절차, 홍보 부족 등이 얽히고설켜 시행 7년째인데도 불구하고 본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 학점교류제의 현주소=학점교류제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대상은 학점교류제를 실시중인 강남대.강릉대.서울대.순천향대.이화여대.전남대.포항공대.한양대(가나다순) 등 전국 8개 대학이었다. 학교당 50명씩 총 400명을, 2004년 7월 22일부터 8월 19일까지 직접 방문 조사했다. 조사 결과는 심각했다. 조사 대상자 중 다니고 있는 학교가 학점교류제를 실시한다고 맞게 대답한 사람은 51.2%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학점교류제 참여도도 무척 낮았다. 학점교류제 실시 여부를 알고 있는 학생 중 단지 19명(9.1%)만이 학점교류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학점교류제에 불참한 이유로는 교류 대학에 듣고 싶은 과목이 없어서(30.2%)가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교통불편(18.0%), 학점 불이익 우려(8.5%), 신청 절차 복잡(7.4%) 등의 순이었다.

하지만 학점교류제에 대한 호감도는 높았다. 자신의 학교에서 학점교류제가 실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학생들 중 학점교류제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견(75.1%)이 그렇지 않다는 의견(24.9%)보다 세배 가까이 많았다.

전남대 생활과학계열 1학년 윤지혜양은 "다양한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이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서울대 원예학과 2학년 이민정 양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 안에 개설되지 않는 강의를 듣고 다른 대학 학생들과 교류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학점교류제에 공감을 표시했다. 반면 학점교류제에 반대한 학생들은 "학생들의 소속감이 떨어질 것 같다"(강릉대 영어영문 4학년 우자천 군),"학점을 받는 데 불이익이 있을 것 같다"(전남대 생활과학계열 1학년 조숙정 양) 등을 지적했다.

◆ 대학의 미흡한 개선노력=학생 대부분이 학점교류제에 긍정적인 데 반해 대학들은 학점교류제 확대에 소극적이다.

서울대.연세대.이화여대 등 일부 대학에서는 학점교류제 실시 이후 비좁던 강의 환경이 더 열악해졌다는 이유를 들어 '학과 전체 인원의 10% 미만'과 같은 인원 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 이는 수강을 위해 학생들 간의 소모적인 경쟁을 야기하고 '열린 교육'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학점교류제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또 대학 간 학점교류제가 원활히 되기 위해서는 타 대학생들에 대한 기숙사시설 개방 등이 선행돼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실제로 기숙사 시설은 자기 대학 학생들을 수용하기에도 모자라 멀리서 학점을 들으러 온 학생들은 적지 않은 숙박비를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외에도 대학들은 교육부가 한 학기당 최대 12학점을 학점교류제를 통해 수강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는데도, 대부분 6학점만 수강할 수 있도록 학칙에 규정하고 있다.

학생 교류가 양방향이 아니라 일방적인 것도 문제다. 한 대학에 수업을 들으러 오는 학생은 많은데 상대편 대학으로 수업을 들으러 가는 학생이 소수인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대학별 교육 수준과 내용의 불균형이 학점교류제 활성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학들은 "대학의 개별적인 노력 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한양대 학적과 김병철 계장은 "정부에서 지방과 중앙의 교육을 서로 교환 발전시킨다는 차원에서 교통비나 기숙사 지원 등 특단의 지원이 있어야 활성화될 것"이라며 "대학이 모든 비용을 다 감당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 정부의 무관심=주무 부처인 교육인적자원부도 뚜렷한 개선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고등교육법에 학점교류제를 명문화한 이래 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대학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학의 학점교류제 참여 인원 수와 개설 교과목 수에 대한 자료를 토대로 대학을 평가할 때 활용하는 정도다. 그 반영비율도 전체의 2%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학점교류제 시행 성과에 대해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학사지원과의 구연희 사무관은 "학점 교류제가 도입된 지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거의 대부분의 대학이 광범위하게 운영하고 있다. 이 정도면 성공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 개선 방안은 없나=교육 전문가들은 학점교류제가 활성화되려면 서울의 학생이 학기 중에도 지방 대학의 수업을 듣는 데 지장이 없어야 하고, 지방의 학생 또한 서울에 있는 대학의 강의를 제한 없이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대한 대안이 거리.교통 상의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원격 화상강의의 도입이다.

현재 원격 화상강의는 한국가상캠퍼스, 열린사이버대학(OCU) 등에 일부 도입돼 있다. 하지만 강의의 종류가 한정돼 있고, 강의의 수준과 질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따라서 원격 화상강의를 하는 대학과 강의수를 늘리고, 기술적으로도 끊김 현상을 없애 실시간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기 대학 학생들의 편의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타 대학 학생들에게 강의를 허락하지 않거나 허용 인원을 극소수로 제한하는 관행도 지양해야 한다. 연세대의 강의를 들으려 했던 한 이화여대 사회과학부 2학년생은 "인기 과목들을 들을 수 없으니, 학점교류제는 있으나 마나한 제도"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자기 대학 학생들에게도 적극적으로 학점교류 관련 정보를 알려야 한다.이화여대의 경우 매학기 학점교류 관련 정보를 학생들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로 통보해주고 있다.

하지만 몇몇 대학은 유명 대학과 학점 교류 협정을 맺을 경우 본교 학생들이 대거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협정 자체를 아예 꺼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 당국이 자기 대학의 학생들이 다른 대학에 가서 공부하는 여건도 마련해주어야 한다. 한 대학이 모든 커리큘럼을 완벽하게 갖출 수 없는 만큼, 실무 수업이 부족한 학교의 학생들이 학점교류제를 통해 이를 보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취재를 위해 만났던 교육 주체들은 정부가 원격 화상강의를 위한 시스템 구축, 강의실 개선, 셔틀버스 운행, 기숙사 제공 등을 위한 재정 지원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truejin00@hanmail.net>

<hk707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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