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잡이 개발이 비피해 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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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시간당 최고 90㎜의 폭우가 강타하고 지나간 23일 오후 2시쯤 경기도 용인시 수지읍 구성면 상하리 민자궁 마을. 주택 20여가구와 공장 등이 시뻘건 토사로 뒤덮여 있다.

마을 위쪽 산허리를 잘라 40~60도 경사로 1백여m에 이르는 절개지를 만든 쌍용건설 아파트 건설 현장은 흙더미가 금방이라도 또다시 흘러내릴 것처럼 보인다.

이에 앞서 폭우가 한창 쏟아지던 지난 22일 밤 42번 국도와 393지방도가 지나는 용인시 기흥읍 신갈오거리 전체와 경부고속도로 IC 일대는 어른 가슴까지 물이 차 올라 6시간 이상 일대 도로가 전면 통제되고 2백여상가와 가옥이 침수됐다.

신갈오거리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박정석(朴正錫.48)씨는 "30년 동안 이곳에서 장사를 해왔지만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이번처럼 도로가 침수된 적은 없었다" 고 말했다.

주말 경기남부 지역 호우 때 곳곳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있는 용인지역에는 '마구잡이 개발 수해' 현상이 나타났다.

짧은 시간에 워낙 많은 비가 내린 탓도 있지만 주변의 산림과 농지가 깎여나가면서 저류(貯留)기능이 약화된데다 개발지역의 토사가 흘러내리면서 하수구 등을 막아 수지.기흥.구성 등 시가지 곳곳이 순식간에 물바다를 이뤘다.

재해대책본부에 따르면 산사태도 예년에 비해 많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현대.LG.동부아파트 등 10여개 아파트가 건설 중인 구성면 마북.언남리 일대는 공사장에서 밀려든 토사가 마북천을 뒤덮어 하상이 갑자기 높아지면서 범람했다.

이로 인해 상가 60여개와 구성농협.한전연구소.서울우유 등이 침수되고 건설현장과 인접한 가옥 1백여가구.농경지 1만2천여평이 황토흙으로 뒤범벅됐다.

구성면 상하리 주민 김상원(金相元.42)씨는 "그동안 한차례도 이렇다할 장마피해가 없던 마을인데 이번 침수는 주변에 아파트 공사장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립대 이경재(李景宰)교수는 "용인 마구잡이 개발 현장처럼 산을 완전히 깎아내고 공사를 할 경우 저수기능이 떨어져 집중호우때 빗물이 한꺼번에 흘러내려 인근 마을에 피해를 줄 수 있다" 며 "산림을 훼손하고 공사를 할 때는 최소한 30~40% 정도의 숲은 남겨 놓아야 산사태 등을 막을 수 있다" 고 말했다.

한편 기흥.수지읍, 구성면 등 3개지역 피해주민들은 23일 모임을 갖고 이번 비 피해의 원인은 마구잡이 개발이라는데 의견을 모으고 건설업체와 용인시 등을 상대로 피해소송을 내기로 했다.

수원〓정재헌.정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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