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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G8의 한반도 동상이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 21일 저녁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장인 오키나와(沖繩) 나고(名護)시 반코쿠신료칸(萬國津梁館). 만찬을 겸한 첫 회의의 말문을 연 정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었다.

그는 건배가 끝나자마자 한반도 정세를 들고나왔다. "북한은 미사일 개발이 모두 방어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나라를 공격목표로 삼는 정책을 취하지 않고 있다. "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내세운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 구축계획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응수를 않고 중동평화협상 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회담 주도권을 둘러싼 신경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중심의제는 한반도 정세로 돌아왔다.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을 비롯한 대량 살상무기에, 일본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의혹에 큰 관심을 보였다.

올해 북한과 국교를 맺은 이탈리아와 북한과 수교를 모색 중인 캐나다는 북한의 탈(脫)고립주의를 환영했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 G8내의 온도차가 드러난 것이다.

이는 특별성명 문안에 짙게 배어 있다. G8 정상들은 남북대화를 지원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북한 미사일 문제 등에 대해선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그래서 문안은 지난 13일의 G8 외무장관 합의내용과 적잖은 차이가 생겼다. 먼저 북한의 미사일 발사 동결조치를 평가하는 내용이 새로 들어갔다.

또 안보.비확산.인권문제에 대한 북한의 대응에 대해 '기대한다' 고 했다. 회담 직전까지 '요구한다' 는 표현으로 굳어졌으나 자극을 피하는 용어로 바뀌었다.

문안에 북한 미사일 등 용어 대신 두루뭉수리한 용어를 쓴 것은 이해 조정의 어려움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의장국 일본의 발빠른 대응이 눈에 띈다. 특별성명은 당초 일본이 밀어붙였으며, 내용도 거의 일본 정부 초안대로 통과됐다.

동북아 문제를 부각시켜 '정치 대국' 이미지를 다졌고, 북한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 북.일 수교협상의 터도 닦았다.

G8의 동상이몽에도 불구하고 남북대화를 지원키로 한 특별성명은 적잖은 무게를 갖는다. 문제는 남북 정상회담의 후속조치를 취해나가면서 한반도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남북 새 시대를 위한 우리의 외교력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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