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예금보험제도의 정착을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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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은행을 비롯한 예금금융기관이 파산했을 때,2천만원까지의 예금은 예금보험공사가 보상해주지만 2,000만원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예금자 자신이 책임지도록 하는 방식의 부분예금보험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한나라당 총재는 국회연설을 통해 2001년부터 시행 예정인 부분예금보험제도의 한시적 연기를 제안했다.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부분예금보험제도 정착은 주요 금융개혁 과제의 하나라며 계획대로 밀고 나갈 것을 재천명했다. 그러자 돈 많은 사람들은 일단 돈을 단기로 운용하면서 우량은행을 찾아 나섰고,경쟁력 떨어지는 은행들은 자금이탈을 걱정하고 있다.금융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산발적으로나마 부분예금보험제도 도입의 시기와 방법을 놓고 토론이 뜨겁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부분예금보험제도를 채택하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 전액보험을 실시하면 은행들이 높은 이자율로 예금을 마구 예치하여 고위험 투자안에 방만하게 대출하는 행태를 보일 것이며,예금자들도 건전한 은행에 예금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할 것이란 논리에서이다. 제도적으로 부분보험이 정착되어야만 이른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논리의 타당성을 떠나서 실제 은행,특히 규모가 큰 은행이 파산했을 때,은행간 예금이나 법인 예금은 몰라도 개인 예금을 전액 보장해주지 않은 예는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형 은행이 파산할 때 전액보장을 해주지 않았다가는 한 은행의 위기가 금융시장 전체로 파급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는 1980년대 초 장영자 여인 사건 이후 종합금융회사(당시 단자회사), 상호신용금고 그리고 증권회사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예금보험제도가 생겨 제2금융권의 안정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때도 예외 없이 문제 금융기관이 생기면 1천만원까지만 보상한다는 부분보험과는 달리 전액 보상해 주었다. 제1금융권에는 1996년에서야 비로소 예금보험공사가 생겼으나 현재는 모든 예금보험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1997년 말 한국경제가 IMF 구제금융을 받고 '은행불사(銀行不死)'의 신화가 깨지면서 미증유의 금융공황 가능성이 감지되었다. 그러자 정부와 IMF는 종래의 '법제적 부분보험/실제적 전액보험'을 일시적으로나마 명실상부한 전액보험으로 바꾸되,2001년부터는 부분보험을 명실상부하게 시행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제 그 약속시간이 불과 5개월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부분예금보험제도를 예정대로 시행하면,정부정책의 일관성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금융구조조정이 미진하여 금융시장 불안은 여전히 남아있고, 회계정보의 투명성 확보와 충분한 정보의 공개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부분보험을 시행하면,근거 없는 소문과 루머에 예금주들이 우왕좌왕하며 피해를 보는 역기능이 예금자들이 우량은행과 부실은행을 선별적으로 이용하는 순기능을 압도할 수 있다.

한국 금융은 아직 정부가 고안한 부분예금보험제도를 감당할 만큼 성숙되지 못했다 따라서 적절한 제도 보완이 요구된다.

나는'공동 책임제'를 제안하고자 한다.우선 2천만원까지는 전액 보장해주되,2천만원을 초과하는 부분은 90-95%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소액 예금자들은 우선적으로 보호된다. 거액 예금자도 상당 부분 보호하여 연쇄적예금인출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금융시장 안정성을 확보한다.이것은 거액 예금자들의은행에 대한 감시 유인을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릇 경제정책은 유연해야 한다. 무조건 원안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작은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금융불안이 가져올 폐해를 상기하여,보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것은 금융시장에 참여하는 이들이 두려워하는 불확실성을 완화하여 불필요한 혼란을 사전에 방지하는 길이다.

정운찬 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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