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회담 결렬…회담 세 주역 곤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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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22년 만의 기적 재연' 을 꿈꾸며 마련된 캠프 데이비드 협상이 9일 만에 성과 없이 1차 결렬됨에 따라 협상의 세 주역은 정치적 곤경에 처하게 됐다.

이번 회담이 실패하면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수반은 정치적으로 실각하거나 권력이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또 회담실패가 전쟁이나 유혈분쟁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어 부담감은 엄청나다.

바라크 총리는 귀국하면 곧바로 총선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그와 연합정부를 형성했던 야당들은 지난 5일 바라크가 캠프 데이비드 회담 참여를 발표한 직후 격렬한 비난과 함께 연정에서 이탈했다.

연정 이탈세력과 리쿠드당 등 야당은 바라크가 성과 없는 회담으로 시간만 낭비했다며 불신임안을 제출했고 조기 총선을 요구하고 있다.

당장 총선을 실시하면 바라크는 지난해 그와 겨뤘던 네타냐후 전 총리에게 패한다는 게 여론조사 결과다.

괴롭기는 아라파트도 마찬가지다. 그는 장기집권과 부패로 적지않은 불신을 사왔다. 그런데 회담마저 별 성과없이 끝나 거센 퇴진압력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아라파트는 또 강경파들로부터 암살협박까지 받아왔다. 빌 클린턴 대통령도 스타일을 구기게 된다.

르윈스키 스캔들 등으로 국내정치에서 곤욕을 치러온 그는 외교와 경제에서 자신의 업적을 남기려는 꿈을 품어왔다.

1993년 오슬로회담 성사를 비롯해 중국.베트남과의 관계정상화 등 외교역량을 자랑해온 그는 이번 협상을 글로벌 중재자로서 자신의 위상을 확고히 하는 마지막 무대로 상정했다.

그러나 만일 회담이 최종 결렬되면 그는 임기말에 불붙는 중동전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전전긍긍하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캠프 데이비드에 참석한 세사람 모두 이번 회담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승부에서는 모두가 승리자가 되기 보다는 모두 패배자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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