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에이즈는 치료 힘든 질병일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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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에이즈는 일단 발병하면 거의 모두 사망한다는 점에서 끔찍한 '보건의료문제' 이면서 동시에 감염과 발병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부터 엄청난 차별을 받는 점에서 심각한 '인권문제' 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1천명 남짓, 실제로는 그 몇배가 되는 감염자와 환자가 있는 데도 실명(實名)으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일 터이다.

질병이 곧 차별과 사회적 죽음을 의미하는 경우는 역사적으로 나병(癩病)이 가장 대표적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나환자는 죄인으로 낙인찍혀 왔다.

나병이 신의 처벌이 아니라 전염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치료법도 발전하면서 차별은 줄어들었다. 그런 반면에 더욱 심한 차별을 동반하는 에이즈가 나타났다.

무서운 기세로 창궐하고 치명적이라는 점에서 에이즈는 현대판 흑사병(黑死病)으로 불리지만, 사회적 죽음을 뜻한다는 점에서는 현대판 나병이라고 할 만하다.

1980년대 초 에이즈 환자가 보고된 이래,에이즈에 대한 초기 대책은 감염자의 조기 발견과 확산 억제로 '에이즈 없는 세상' 을 만드는 것이었으며 환자 개개인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감염자.환자 자신들과 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에 의해 인권문제가 부각되면서, 또 초기 대책이 예방면에서도 효과가 없음이 드러나면서 대책은 '에이즈와 더불어 사는 세상' 으로 바뀌었다.

감염자.환자에 대한 차별의식을 줄이기 위해 지도적 인사가 공석에서 그들과 연대감을 표현하고 충분한 의료 및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등이 변화를 잘 보여주는 예들이다.

에이즈는 에이즈바이러스(HIV)에 감염되어 나타나는 진행성 증후군이다. HIV에 감염되면 면역기능이 상실되어 감염병에 잘 걸리며 암 발생률도 일반인에 비해 높다.

그러나 HIV에 감염되었다고 모두 에이즈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

에이즈(환자)에 대한 편견은 'HIV 감염자=에이즈 환자=죽음' 이라는 잘못된 통념에서도 생기기 때문이다.

에이즈는 교육, 적절한 약물 투약, 2차감염 예방 등으로 치료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감염자.환자에 대한 정신적 지원, 그들과 의료인과의 친밀한 관계가 중요하다.

그러한 지원 속에서 그들은 안정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투병할 수 있으며 설령 죽음을 맞게 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에이즈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수적으로는 큰 문제가 아니다. 감염자.발병자.사망자 모두 전세계 평균의 1백분의 1 내외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인권적.의료적 보호대상이라기보다는 1차적으로 감시대상이라는 점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이다.

그 점은 에이즈 대책의 목적과 그것을 구체화한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의 명칭과 내용에서 확인된다.

감염자.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진료와 재활, 그리고 고용 등에서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미국 등과 같이 그들을 장애인 범주에 포함시켜 장애인복지법의 수혜 대상으로 하든지, 아니면 법령의 명칭을 '후천성면역결핍증 감염자.환자 복지법' (가칭)으로 바꾸고 내용도 그에 걸맞도록 개정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들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며 국제적 상규에도 걸맞다.

감염자.환자에 대한 인권 침해와 보호의 미흡 등 문제가 많은데도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한 것은 그러한 사실을 공론화하지 못했던 것도 중요한 이유이며 그것은 에이즈에 대한 인식이 잘못된 데에 기인한다.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차별은 에이즈에 대한 것만이 아니고 그 뿌리도 매우 깊고 다양하지만 에이즈에 관해서는 '무지' 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에이즈의 정체와 예후 등에 관해 정확한 사실을 인식토록 하는 것이 편견을 줄이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할 것이다. 에이즈는 치료가 매우 까다로운 '질병' 일 뿐이다.

황상익 <서울대 의과대학.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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