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가족, 친구-. 사람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존재다. 때론 그들 때문에 웃고, 때론 그들의 말 한마디에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중앙SUNDAY가 인터뷰한 108명의 시민 대부분은 가장 보고 싶은 사람(92명), 자신을 울린 사람(65명), 웃게 한 사람(75명)으로 가족과 친구를 꼽았다. 너무 가까워 자칫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는 가족ㆍ친구들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남편이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내 이쁜 사랑’이란 이름으로 신호가 간다. 아내 전화기에 ‘내 신랑님’이란 이름과 함께 하트 모양 배경 속 남편 사진이 떴다. 23일 일산 서구 탄현동 강도현(58·한국 장애인고용촉진공단 부산 직업능력개발센터 대표)씨 집에서 만난 부부는 기자에게 평소 통화모습을 보여줬다. 환갑을 눈앞에 두고 있는 강씨는 아내(오맹자·53)와 매일 세 번 이상 통화를 하고 메시지를 보내야 마음이 편해진다. 밤에는 영상통화로 얼굴을 봐야 잠을 잘 수 있다고 한다. “활짝 웃는 중년의 아내 모습을 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해요. 내 삶의 이유예요.” 강씨에게 아내는 살아가는 힘이다. 결혼 29년째이지만 아내는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이다.부부는 6년 전부터는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 2004년 강씨가 부산으로 발령나면서부터다. 주말에 일산 집에 강씨가 오면 부부는 밀렸던 이야기를 하느라 쉴 틈이 없다. 매일 통화를 해도 할 말이 너무 많단다. 시간이 아까워 TV도 없앴다. 외출할 때면 항상 손을 꼭 잡고 다닌다. 부부에게도 다른 이들처럼 위기가 있었다. 결혼 후 3년이 지난 어느날 강씨는 갑자기 아내가 싫어졌다고 한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1년여를 보냈다. 아내는 남편을 믿고 묵묵히 기다렸다. 강씨는 “어느 날 요리를 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는데 순간 감정이 북받쳐 오르더군요. 조용히 뒤에서 안아주면서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었죠”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만 살아도 시간이 아까운데 그땐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하면 너무 후회된다고 말하는 강씨는 “강도(강도현)가 맹자(오맹자)랑 사는데 더욱 더 사랑해야죠” 라며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특수교사'내겐 너무 예쁜 아이들' 하루 하루가 시트콤 같은 학교가 있다. 주인공은 특수학교인 서울정문학교 중학부 학생 80명과 이 학교의 배지혜(25) 음악교사다. 배 교사는 학생들 때문에 지난 1년을 웃고 울고 했다고 한다. 배 교사를 웃게 만든 일화다. 학기 초 배 교사는 새 옷을 입고 오는 학생에게 “처음 보는 옷 입었네. 참 예쁘다” 라며 칭찬을 해줬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학생들이 매일 아침 자기 옷도 봐달라며 배 교사 주위로 모여들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모자나 목도리, 머리띠를 손으로 가리켰다.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겉옷을 벗어 속옷을 보여주는 학생도 있었다. 배 교사는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선생님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하게 됐다. 배 교사는 지금도 아이들의 새 옷을 보면 “예쁘다” 라고 말해준다. 배 교사의 특수학교 교사생활은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장애인 봉사활동을 하면서 생각했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지적장애·자폐·정서장애·지체장애 등을 가진 학생들의 돌발행동에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학교에서 배운 이론은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안 됐다. 남 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을 보는 눈이 열렸다. “아이들이 악의가 있거나 반항하려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단지 장애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익숙지 않았던 것이에요.” 배 교사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꿈이다. 학생들이 일반인과 같은 어엿한 사회인이 될 때까지 그는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칠 것이라고 다짐했다. 피부색 편견이 슬픈 인도인 영어 강사 6개월 전 한 여자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의 이름은 다니엘라 혹은 이하늘. 인도의 친할아버지와 한국의 외할아버지가 각각 이름을 하나씩 지어줬다. 아빠는 경기도 한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학교 영어교사로 일하고 있는 마샬 윈(30). 2004년 인도로 유학온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 2005년부터 한국에서 살고 있다. 올 한 해 마샬 윈에게 행복한 웃음을 준 사람은 아내와 딸이었다. 인도 사람이 한국사회에 적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대뜸 어디 공장에서 일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피부색이 검은 외국인은 으레 공장에서 일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얼마 전에도 속상한 일이 있었다. 마샬 윈이 강의하는 방과후 학교 강좌는 항상 정원을 넘겼다. 대기자 명단이 필요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날 학부모 공개강좌를 열었다. 그런데 공개 강좌 이후 학생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학부모들이 유색인 영어 교사를 꺼려했기 때문이다. 마샬 윈은 “물론 속상하긴 하지만 인도에 대해 한국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 생각해요. 제대로 알게 되면 그러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가 경험한 대부분의 한국사람은 돕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절했다고 한다. 낯선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아내와 딸의 존재는 그에게 큰 힘이 됐다. 요즘 이 부부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한국사회에서 혼혈인으로 살아가야 할 아이 때문이다. 부부는 “우리 아이가 성인이 될 때쯤이면 한국사회에서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덕수궁 수문장의 눈물과 희망
29년 동안 내게 웃어준 아내 '당신은 내 삶의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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