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정치가와 정치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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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치가와 정치꾼을 구별해 말할 때 영어로 전자는 '스테이츠먼' 이고 후자는 '폴리티션' 이다. 영어의 상식이다.

스테이츠먼이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않고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는 경세가(經世家)라면 폴리티션은 국가보다 자신과 당파의 이익에 집착하는 정상배(政商輩)라 할 수 있다.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는 구분은 영국 경제학자였던 콜린 클라크의 명쾌한 정의다.

"정치가는 나라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정치인을 말하고 정치꾼은 자신을 위해 나라를 이용하는 정치인을 말한다" 는 전 프랑스 대통령 조르주 퐁피두의 말도 결국 같은 뜻이다.

우리의 경우 구태여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 가치가 없는 탓인지 정치가도.정치꾼도 모두 정치인이다.

정치인의 속성을 꼬집은 말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니키타 흐루시초프의 촌철살인(寸鐵殺人)같은 익살이 자주 인용된다.

미.소간 체제경쟁이 한창이던 1959년 역사적인 미국 방문에 나선 흐루시초프는 미국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체제의 차이를 염두에 둔 미국 기자가 정치인의 역할에 대해 묻자 흐루시초프는 "정치인은 어디서나 마찬가지" 라며 "강이 없는 곳에도 다리를 놓겠다고 약속하는 게 정치인" 이라고 받아넘겼다.

다리를 놓든 도로를 깔든 당선이 되면 뭐든 하겠다고 약속해 당선된 16대 국회의원들의 첫 대정부 질문이 엊그제 끝났다.

전체 의원의 절반 가까이가 새 얼굴들이고 일문일답식 진행방식이 새로 도입된 탓도 있어 뭔가 달라질 걸 기대했던 민초들로선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질문방식이나 내용, 수준 모두 우리가 너무 익숙해 있는 것들이다.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고, 당파끼리 패거리를 지어 서로 을러대는 폼새도 전혀 달라진 게 없다.

흘러간 옛노래를 듣는 느낌이랄까. 정치가는 없고 정치꾼만 판치는 나라에서 모든 부담과 책임은 최고 통치자 일인에게 쏠리게 마련이다.

걸핏하면 "대통령 나와라" 가 되고 만다.

"일이 안될 때 사람들은 모두 대통령을 원망한다. 그것이 대통령에게 급료를 주는 이유 중 하나다." 미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의 조크다.

욕먹는 대가로 월급받는 신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처럼 불행한 대통령도 없을 것 같다.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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