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행 국회 부끄러운 제헌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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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만섭(李萬燮)국회의장은 16일 "제헌절(17일)을 앞두고 국회가 파행을 겪고 있어 죄송스럽다" 는 심경을 토로했다.

새 정치의 열망 속에서 출범한 16대 국회의 첫 제헌절 행사는 여야의 대치 속에 맞게 됐다.

16일 민주당 정균환(鄭均桓)총무와 한나라당 정창화(鄭昌和)총무는 레이크사이드CC에서 만났지만 타개책을 짜내지 못했다.

골프모임은 임동원(林東源)국정원장이 국회정보위 소속 의원들을 초청해 이뤄진 것.

두 鄭총무는 기존의 당 입장을 되풀이 했다. ▶이회창 총재를 비난한 민주당 정대철(鄭大哲.서울 중)의원의 사과▶4.13 총선 선거부정 문제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가 한나라당 요구사항이다.

반면 민주당은 국정조사 요구를 검찰의 선거 수사대상에 오른 한나라당 의원들의 보호용으로 비난하고 있다.

여기에다 이회창 총재에게 직격탄을 날린 정대철 의원은 "사과는 무슨 사과냐" 고 일축하고 있다. 정대철 의원의 행태에 대해 민주당 내부에선 '시원한 대야공세' 라는 칭찬이 있는가 하면 4년 만에 국회에 복귀한 鄭의원의 '원맨쇼' 라는 지적도 있다.

17일 제헌절 행사 뒤에 두 당 총무는 다시 만날 예정이나 18일부터 국회가 제대로 굴러갈지는 불확실하다.

16대 국회가 출범부터 뒤뚱거리는 이유를 놓고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 지나치게 자기만의 이슈에 집착하기 때문" 이라는 비판이 정치권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우선 양쪽이 앞세우는 쟁점과 관심사가 다르다. 한나라당은 부정선거문제를 어떻게든 쟁점화할 태세다.

반면 민주당은 6.15 남북선언문을 국회 차원에서 뒷받침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때문에 서로의 관심사를 평가절하하고 그 과정에서 '전례드문 부정선거' '근거없는 음해' 라든가, '친북세력' '반통일세력' 이라는 험악한 용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양당 지도부가 정국주도권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점도 국회 파행의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여소야대(與小野大)라는 어려운 환경에서 정국을 관리해야 할 민주당으로선 정상회담 이슈를 계속 확대.발전시키는데 비중을 두고 있다.

민주당 당직자는 정상회담이 창출한 국민적 지지를 정권재창출의 디딤돌로까지 다져놓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반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민주당의 이런 의도를 차단해야 할 입장이다. 여소야대 구도를 바탕으로 국회쪽으로 정국주도권을 끌고 와야 한다는 점을 당직자들은 염두에 두고 있다. 부정선거 국정조사를 내세우면서 '정상회담 이슈' 를 잠재우는 효과도 따져보고 있다.

이상일.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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