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장비 빼돌리기 노무현 정부 숨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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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20일 구글 위성사진상의 함경남도 금호지구(신포시 일대) 경수로 건설 현장. ①부분은 원자로가 들어갈 격납시설 공사 현장. ②부분은 검은색 천막으로 씌워진 건설 자재·장비. 2006년 1월 한국 등 인력이 완전 철수하기 전 모든 자재·장비가 천막으로 씌워졌다. [구글 어스]

북한의 함경남도 금호지구(신포시 일대) 경수로 자재·장비 무단 반출은 한국 및 국제사회와의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다. 북한이 대북 경수로 건설사업을 추진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로부터 공사를 따낸 우리 업체들이 운용하던 455억원어치의 물품을 아무런 통보 없이 빼갔기 때문이다. 특히 군사적 전용을 우려해 철저히 관리해온 크레인·굴착기 등 중장비와 대형 덤프트럭이 포함된 점은 우려스럽다고 정부 측은 설명한다. 한 당국자는 “2006년 10월과 지난 5월 북한의 핵 실험 때 경수로에서 빼낸 자재·장비가 이용됐다는 의혹이 일각에서 제기됐다”고 전했다.

관계 당국은 2006년 1월 한국 측이 경수로 건설 현장에서 완전 철수한 직후부터 북한의 무단 반출이 이뤄지기 시작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노무현 정부는 이 문제를 비밀에 부쳤고, 이명박 정부도 문제 삼지 않았다. 관련 장비들은 중도 하차한 경수로 사업의 청산 과정에서 매각을 통해 손실 보전에 쓰여야 할 자산이다. 하지만 북한이 일방적으로 가져가는 바람에 우리 국민의 세금만 축이 나게 됐다.

북한 외무성은 2003년 11월 경수로 건설 중단에 따른 손실을 거론하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금호지구에 들여온 장비·자재의 반출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년 뒤 경수로 사업이 파국을 맞자 북한은 장비 반출을 금한 채 한국 근로자를 추방하듯 모두 내보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남측에 현장 접근을 막고 있는 상황”이라며 “북한이 보상 문제 등에 대한 청산 절차를 밟기도 전에 장비를 무단 반출한 것은 명백한 합의 위반이자 절도로 간주될 행위”라고 말했다.

현재 경수로 비용 청산 절차는 진통을 겪고 있다. 최근 열린 KEDO 이사회에서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95년 12월 협정 체결 시 예상 건설비 46억 달러 중 한국이 70%를 부담키로 했다. 건설 중단 시의 35% 공정에 들어간 한국 측 실제 부담분 11억3700만 달러(중단 당시 환율로 1조3655억원)는 정부가 국채 발행 등으로 조달했다. 사업 중단 때 정부는 이미 완성해 두산중공업에 보관 중이던 원자로 설비 등을 판매해 비용을 충당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한국형 원자로는 140만㎾급이 표준형으로 자리잡아 당시 북한에 2기를 제공키로 했던 100만㎾급은 용처가 마땅치 않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여의도 면적의 세 배인 860만㎡(260만 평)의 금호지구는 현재 한반도의 거대한 흉물로 남아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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