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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플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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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비만도 신종 플루 같은 ‘전염병’이란다. 친구가 살이 찌면 나도 덩달아 뚱뚱해질 확률이 무려 60% 가까이 높아진다. 심지어 친구의 친구가 체중이 늘어도 내 몸매가 무너진다. 그가 내 친구에게, 이어 그 친구가 내게 악영향을 끼쳐서다. 흡사 치명적인 바이러스처럼 가까운 사람끼리 생각과 행동을 닮아가는 속성이 비만을 전염시킨다는 거다. 2년 전 미국 하버드대 의대와 UC 샌디에이고대 연구팀이 인간관계로 얽힌 1만2000여 명을 추적 조사해 내놓은 연구 결과다.

비만뿐 아니다. 1년 후 같은 연구팀이 행복도 전염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직접 아는 지인이 행복하면 15%, 마누라 친구나 친구 마누라처럼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이 행복해도 10%쯤 내가 행복해질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그래서 단지 친구 숫자가 많은 것보단 행복한 친구를 한둘 갖는 편이 내 행복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게 연구팀의 추론이다.

저마다 비장한 각오로 새해 새 결심을 세워보는 세밑, 두 연구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뭘까. 뚱뚱한 친구, 불행한 친구와는 당장 의절한다? 아닐 게다. 그래서야 신종 플루 걸린 친구 왕따시키는 철부지랑 다를 게 없다. 그 대신 내년에 몸짱으로 거듭나고 싶다면 같이 살 빼자며 친구들을 꼬드겨 보자. 행복이 넘치는 한 해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활짝 웃으며 행복을 전파하고 말이다.

평소 낙천적인 기질과는 거리가 멀다고, 게다가 웃을 일 하나 없는 형편이라고 지레 포기할 일이 아니다. 심리학자 소냐 류보머스키에 따르면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데 유전적 요인은 50%, 환경적 요인은 10%의 영향을 미칠 뿐이란다. 나머지 40%는 매사 좋은 쪽으로 보려는 노력 여하에 달렸다는 거다. 심지어 요즘처럼 안 좋은 경제도 뒤집어보면 좋은 구석이 있다. 일이 줄면 그만큼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는다. 차를 덜 몰아 사고도 덜 난다. 외식 자주 못 하니 기름진 음식 섭취가 준다. 일견 억지 같지만 실제로 실업률이 1%포인트 높아지면 되레 사망률이 0.5%포인트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알파벳 A부터 Z까지 1·2·3 순서대로 점수를 매겨 보면 모든 철자를 더해 100점 만점이 되는 단어가 바로 마음가짐(attitude)이다. 마음만 먹으면 시련 속에서도 얼마든지 행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니 웃자. 내가 웃으면 세상도 따라 웃을 테니.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