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샘] 극장의 고급화, 영화문화 왜곡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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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한여름에 서울시내 극장들이 '떨고' 있다. 강남에 생긴 매머드 극장 '메가박스 씨네플럭스' 때문이다.

개관한 지 두 달도 안 돼 이름대로 '엉청난(메가)흥행(박스)' 을 보장하는 극장으로 떠오른 것. 평일엔 하루 1만5천명, 주말엔 하루 2만5천명이 찾는다. 주말에는 거의 매진이고 평일도 다른 극장보다 3배이상 회전율이 높다.

16개관에 총 4천5백석으로 동양 최대 규모인데다 음향시설이 1급이라는 점, 주변엔 쇼핑.오락 시설까지 완비한 점이 주효했다.

11개관을 가진 강변 CGV 극장이 메가박스에 관객을 뺏겨 타격을 받고 있고 종로 쪽에도 여파가 있다.

이 때문에 시설 개보수를 하는 극장이 늘고 이마저도 힘든 영세 극장은 한숨만 짓는다. 콧대가 세진 메가박스 측은 "돈이 되는 오락영화가 아니면 안 받겠다" 며 큰소리친다. 제작사와 배급사에서 '가짜 예매 전화' 로 예매율을 높이는 해프닝도 있다.

극장의 고급화.멀티플렉스화는 관객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이득이 되는 건 아니다. 오락영화만 성행해 다양한 작품을 접할 기회가 준다. 입장료도 들먹거린다.

시설비에 들어간 만큼 회수해야하기 때문. 얼마전 '미션임파서블 2' 의 개봉 때 일부 극장이 입장료를 올리려다 여론에 밀려 철회했다.

한국영화 의무 상영제인 스크린쿼터제도 흔들릴 지 모른다.

일본에서는 몇년 전 멀티플렉스가 영화 문화를 왜곡한다며 논란이 인 적이 있다. 한국은 일본보다 더 빠르게 극장이 고급화.멀티플렉스화 하고 있다.

고전영화.예술영화 등 '소수영화' 를 보호하고 관객의 다채로운 영화 체험을 위해서 극장 문제를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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