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왕세자 6차례 통화 … 프랑스로 기울던 판세 뒤집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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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수주를 위해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왕세자의 영접을 받으며 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왕세자가 영접을 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아부다비=연합뉴스]

한전 컨소시엄이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건설 수주를 따낸 배경엔 이명박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고 청와대가 27일 소개했다.

청와대의 설명에 의하면 지난 5월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UAE 방문 이후 원전 수주작업에 패색이 짙어졌다. 이런 분위기를 돌린 건 11월 초부터 가동된 이 대통령의 전화외교다.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보고를 접한 이 대통령은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부다비 왕세자(48)를 상대로 고공설득전을 시작했다. 왕세자가 이번 수주의 키를 쥔 인물이라는 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과거 현대건설 CEO 시절 말레이시아 페낭대교 건설 입찰 때도 마하티르 전 총리의 마음을 파고드는 맨투맨 전략으로 수주에 성공했었다. 이 대통령은 11월 초 첫 전화를 시작으로 모하메드 왕세자와 모두 여섯 차례 통화를 했다. 이 대통령은 첫 통화에서 “한국에 시간을 달라”고 했다. 이후 “UAE도 원유만으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수십 년 뒤, 포스트 오일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원자력과 정보통신, 인력 양성의 상생협력을 한국이 제공하겠다”는 메시지를 계속 던졌다. 이 대통령의 설득에 모하메드 왕세자가 차츰 마음을 열었다. 급기야 왕세자는 “한국과 우리는 형제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공통점도 있다. 이 대통령은 녹색성장을 기치로 내걸었고, 모하메드 왕세자는 산유국 중 처음으로 ‘저탄소 도시’ 건설을 주도했다. 이런 점이 두 사람의 의기투합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또 프랑스, 미국+일본 컨소시엄과의 경쟁이 격화되자 ‘한국과 UAE 간 정부 차원의 협력’을 제안하는 친서를 UAE에 전달했다.

이 대통령이 희소식을 접한 것은 지난 17~19일 기후변화회의 참석차 덴마크 코펜하겐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중이었다. 하지만 이때도 UAE 측은 “방문해 달라”고만 했을 뿐 수주 여부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이 대통령이 이번 수주에 ‘올인’하다시피 한 데엔 과거의 기억도 영향을 미쳤다. 현대건설 재직 시절 이 대통령은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한국 원전건설사업에 하청업체로 참여했다. 현재 총 20기의 국내 원전 중 12기가 그의 손을 거쳐 건설됐다. 당시 이 대통령은 기술을 조금이라도 많이 전수받기 위해 서울에 온 웨스팅하우스 임원과 14시간에 걸친 담판협상을 벌였다. 보리차로 저녁식사를 때웠고, “합의가 안 되면 집에 안 간다”고 엄포를 놓으며 진행한 마라톤 협상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거꾸로 한전 컨소시엄에 웨스팅 하우스가 작은 지분의 하청업체로 참여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런 격세지감에 이 대통령이 감개무량해했다”고 전했다. 최근 참모진과의 회의에서도 이 대통령은 “기술이 없어 힘겹고 설움 받던 시절이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한전에 수주전략을 직접 조언하는 등 ‘총감독’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수주 전 초기부터 컨소시엄 구성과 입찰 가격 전략 등 세밀한 부분까지 직접 코치를 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김쌍수 사장에게 맞춤형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며 “UAE 쪽에 미래를 함께 개척해 나갈 동반자로서의 진정성을 보여 주라고 조언했다”고 전했다.  

아부다비=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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