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경쟁력 비상 걸린 ‘한국 관광의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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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중국인 관광객을 주 고객으로 여행사를 운영하는 K(45)씨는 내년도 패키지 관광상품의 가격을 올릴지를 두고 고민이 많다.

K씨가 고심하는 이유는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호텔 숙박료가 내년부터 오르기 때문이다. 그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몇천원 차이에도 민감한데 가격을 올리면 관광객이 줄지 않을까 염려돼 결정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내년부터 숙박료가 오르는 이유는 그동안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적용되던 부가세 영세율(零稅率)이 폐지되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숙박요금의 10%인 부가세를 면제해 주는 것으로 2007년 7월 시행됐다. 베이징 올림픽과 원화가치 상승이라는 악재를 안게 된 국내 여행업계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1년6개월 뒤 폐지되는 일몰법이어서 올해 말로 수명이 끝난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내년부터 숙박료가 10% 오르는 셈이 된다. 현재 중국인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3박4일 20만원(항공료 제외, 이 중 숙박료는 2인1실 3박에 10만원)짜리 상품의 경우 부가세 영세율이 폐지되면 21만~22만원을 받아야 한다.

국내 여행업계는 영세율 폐지로 일본인과 중국인 여행객이 감소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하나투어 오정환 마케팅팀장은 “패키지 여행은 조그만 가격 차이에도 선택이 달라진다”며 “숙박료 10%는 여행사의 수익 구조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금액”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내년부터 2012년까지를 한국 방문의 해로 정해 놓고 정작 관광요금이 올라가면 앞뒤가 안 맞는다”며 “가격 경쟁력이 사라지면 일본인 관광객은 중국에, 중국인 관광객은 일본에 뺏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관광호텔업협회 이재길 사무처장은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 추이를 감안할 때 부가세 영세율을 유지하면 내년도 관광 수입과 법인세 수입은 2070억원에 달하지만 폐지로 인한 세수 증가액은 1000억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내년에 860만 명의 관광객 유치(올해 716만 명)를 목표로 세운 서울시도 관광객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서울시는 11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한국 방문의 해가 끝나는 2012년까지 부가세 영세율을 유지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는 폐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기재부 부가가치세과 양순필 사무관은 “국내 여행업계의 어려움을 덜어주고자 영세율을 도입했지만 당시에 비해 원화가치가 떨어지는 등 여건이 좋아졌다”며 “도입 목적을 달성한 일몰 법안은 정비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말했다.

관광업계는 국회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 소위원회에 ‘부가가치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해외 관광객 유치를 지원하기 위해 부가세 영세율을 폐지하지 않고 계속 유지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4대 강 예산 삭감 등을 둘러싸고 국회가 공전 중이어서 이 법안이 올해 안에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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