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건강과 환경 모두 챙기는 ‘푸드 마일리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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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마일리지(food milelage)를 아시나요?’ 이 용어는 1994년 영국 환경운동가 팀 랭이 처음 사용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쌀·옥수수·토마토·시금치·사과 등 음식재료가 얼마나 멀리서부터 온 것인가를 보여주는 지표다. 식품의 양(t)에 이동 거리(㎞)를 곱한 값으로 단위는 t·㎞다.

미국 네브래스카주에서 재배된 밀이 뉴멕시코주 산타페에 위치한 식료품점에서 ‘케이크 믹스’로 팔릴 때까지 5000마일 이상 장거리 여행을 한다는 추적결과가 있다. 네브래스카 농장의 밀→인근 곡물 저장고(40마일)→애리조나주에 있는 제분소(1206마일)→일리노이주에 있는 케이크 믹스 제조공장(1860마일)→유타주에 있는 물류센터(1406마일)→산타페의 식료품점(598마일)에 이르는 긴 여정이다.

이렇게 이동하기 위해 대형 트럭이 무수히 동원됐을 것이다. 트럭의 배기구에선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는 물론 각종 환경 유해물질이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장거리 여행엔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밀·케이크 믹스 같은 농산물·가공식품은 시간이 흐르면 상품성을 잃는다. 그러하니 보존료 등 우리 건강엔 별로 이로울 것이 없는 첨가물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식량자급률이 27%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식품의 푸드 마일리지가 전반적으로 높은 것은 당연지사다. 최근 국립환경과학원의 발표에 따르면 2007년 한국의 수입식품 푸드 마일리지는 1인당 5121t·㎞에 달한다. 조사한 한국·일본·영국·프랑스 4개국 중 2위였다. 영국의 2배, 프랑스의 6배였다.

푸드 마일리지가 높을수록 온실가스 배출량도 증가한다. 수입식품 수송에 따른 한국인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14㎏(2007년)으로 네 나라중 일본 다음이었다.

높은 푸드 마일리지는 환경에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건강에도 피해를 준다. 신선한 식품보다 오래 묵은 식품, 제철 식품보다 장기 저장식품을 섭취할 가능성이 커져서다.

건강과 환경을 위해 푸드 마일리지를 줄이려면 다음 4가지를 실천해야 한다.

첫째, 로컬 푸드(local food)를 사랑한다. 로컬 푸드는 지역 농산물을 뜻한다. 우리의 신토불이(身土不二) 사상과 맥이 닿아 있다. 일본에선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이라 한다. 일본은 이를 통해 식량 자급률을 높이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 애향심을 고취시키고 전통 음식 문화 계승 효과도 거둔다. 단 우리나라에선 적절한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 로컬 푸드 운동이 자칫 우리 지자체 농산물만 유통시키겠다는 소지역주의로 빠질 위험성이 있어서다.

프랑스 와인의 푸드 마일리지는 8976㎞로 복분자술(255㎞)보다 35배나 높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줄이면 식품의 영양·신선도는 극대화된다. 생산자는 복잡한 유통단계를 거치지 않아 소득이 늘어난다.

둘째, 제철 음식을 즐긴다. 제철에 나온 식품은 맛·영양이 절정이다. 그만큼 우리 건강에 이롭다. 또 소비자가 제철 과일·채소를 선호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면 생산자는 비닐하우스에 투입되는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이는 온실가스 감축 요인이다.

셋째, 각 식품의 라벨에 푸드 마일리지를 표시하도록 한다. 그래야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해진다. 농촌진흥청이 발간하는 식품 성분표에 각 식품의 탄소배출량 항목을 추가하는 정도로는 미흡하다.

넷째, 식생활교육을 활성화한다. 내년부터 본격 실시될 식생활교육을 통해 ‘푸드 마일리지 줄이기 캠페인’은 ‘도랑(환경)치고 가재(건강)잡는 묘방’이란 사실을 어린이·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렸으면 좋겠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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