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기념탑' 쓰레기로 버린 신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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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979년 말 당시 신군부는 서울 탑골공원 안의 조형물인 3.1독립선언기념탑을 무단 철거한다. 기념탑은 삼청공원 쓰레기장에 거적이 씌워진 채 방치됐으나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철거 이유는 아직도 미스테리. 만세 부르며 항쟁하는 조각상이 학생시위를 부추긴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이듬해 여름 이 사실이 알려지며 원상복구를 요구하는 문화계의 진정이 잇달았는데, 막상 임시복원에만 12년이 걸렸다.

'3.1독립선언기념탑 백서'(김종영미술관 펴냄)는 그 우여곡절의 과정을 빼곡히 담은 흔지않은 자료집이다. 사건 발생 사반세기 만에 나온 백서는 "이런 기록을 남겨 다시는 이런 무모한 만행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회적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백서 제작은 기념탑을 조각했던 우성(又誠) 김종영(1915~82) 전 서울대 교수의 제자인 조각가 최종태(김종영미술관장, 서울대 명예교수)씨가 맡았다. 백서는 당시 우성이 국가보위원회 민원담당실에 보낸 진정서를 포함한 34종의 건의서.청원서 등과 이를 보도했던 신문기사.사설 등 60여건을 날짜 순으로 정리했다.

어이없는 점은 이 기념탑이 1963년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의 주도로 초등학생들을 포함한 국민성금을 거둬 건립됐다는 점이다. 기념탑의 제작 역시 당시 미술계 역량을 동원해 가능했다. 문제는 이런 과정을 몰랐던 신군부는 예술작품에 대한 이해는 커녕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건너 뛴 비밀리에 무단철거라는 '예술 테러'를 단행한 것이다.

최교수는 "스승 우성은 무단철거 따른 충격 때문에 사건 발생 2년 뒤 68세의 연세로 타계를 했다. 무지한 공권력이 작품은 물론 한 예술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비감에 찬 발언을 총론에 남기고 있다. 현재도 기념탑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 1980년대 한때 독립기념관 내에 설치하자는 논의도 다시 무산되는 우여곡절을 거쳐 1991년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의 옛 독립기념공원에 '임시' 복원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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