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산책] '반세계화 투쟁' 카니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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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프랑스 중남부의 작은 마을 밀로의 경범재판소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30일 열리는 프랑스 농민 운동가 조제 보베와 9명의 동조자들에 대한 재판 때문이다.

프랑스 농민연합 대변인인 보베는 지난해 8월 동료 농민들을 이끌고 밀로에 건설 중이던 패스트 푸드점 맥도널드를 공격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저항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지난해 말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회의에서도 프랑스산 치즈를 거리에서 나눠주며 반 세계화 시위를 주도했다.

보베는 프랑스 형법상 최고 5년의 징역과 50만프랑(약 8천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보베와 그의 동료들은 걱정은커녕 이번 재판을 반세계화 운동의 축제로 삼아 전세계에 널리 홍보한다는 계획이다.

밀로에는 전체 주민수(2만1천명)보다 많은 2만5천여명의 반세계화 운동가들이 전세계에서 모여들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거리에서는 서커스.연극.음악회.전통음식 시식회 등 16개 행사가 펼쳐지고 프랑시스 카브렐.제브다 등 프랑스 인기 가수.그룹들이 벌이는 무료 콘서트로 축제는 절정에 이를 예정이다.

14개의 반세계화 포럼도 준비돼 있다. 그린피스와 프랑스 농민연합이 주최한 '유전자변형식품과 특허' 포럼, 브라질의 토지 비소유 운동의 '하나의 땅, 하나의 지붕, 하나의 지구적 투쟁' 포럼 등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문화와 세계화' 를 주제로 포럼을 열며 프랑스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틱의 베르나르 카상 사장도 '국제 금융기구들의 통제' 포럼을 연다.

프랑스 경찰은 수천명의 경찰 병력을 밀로 일대에 배치했다.

보베 덕분에 세계화의 상징이 돼버린 맥도널드 프랑스측은 재판에 대해 일절 언급을 삼가고 있다.

악몽 같은 폭풍이 빨리 지나가 프랑스에서만 연간 80개씩 새 점포가 들어서는 초고속 성장세가 이어지기를 기대할 뿐이다.

"우리 상품원료 90%가 프랑스산이고 프랑스의 4만5천여 목축업자들로부터 쇠고기를 구매한다.

우리가 세계화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 드니 엔느켕 맥도널드 프랑스 사장의 조용한 항변이다.

이훈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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