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공무원 108명이 예산 빼돌리기 가담하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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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23일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권력형 비리와 토착 비리의 엄단을 지시했다. 강한 톤이었다. 그간 이 대통령이 강조해온 ‘친서민’ 기조와 비리 척결을 연결시켰다는 점도 눈에 띈다. 또 철저히 수사하되 억울한 사람이 나와선 안 된다는 점도 함께 강조했다. 법무부는 2012년까지 전국 고검 및 주요 지검에 전문수사팀을 만들어 토착 세력의 이권 개입과 공무원 비리를 철저히 수사키로 했다.

◆“비리에 강력히 대처해야 서민들이 위로받아”=이 대통령은 서민들의 생활과 더 밀접한 ‘토착 비리’ 척결을 전면에 내세웠다. “검찰이 보다 강력히 대처해야 힘들게 살아가는 서민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라거나 “토착 비리는 생계형 범죄가 아니다”고 강조한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적발된 충남 홍성군의 비리 사례를 직접 열거했다. “공무원 670명 중 108명이 집단으로 예산을 빼돌리는 데 가담했다. 어떤 직원은 4496만원을 빼돌려 먹고사는 데 쓴 게 아니라 유흥비로 다 쓰고, 어떤 직원은 1700만원을 고급 유흥주점에서 썼다”며 “생계형 범죄가 아니며, 국민들이 볼 때 우리 군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기초단체장 230명 중 10%가 당선무효로 중간에 물러났고, 비리로 입건된 공기업 임직원 180명 중 51명이 구속됐다”며 토착 비리의 심각성을 부각했다. 그러면서 “편안하게 일자리가 보장된 사람들이 이렇게 비리를 저지르면 ‘없는 사람’들은 어깨가 처진다”며 ‘지자체-토착세력-사이비 언론’을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했다. 김은혜 대변인은 “중앙도 중요하지만 토착 비리 근절 없이 투명한 사회 건설이 불가능하며, 심장이 병이 들면 죽지만 모세혈관이 썩어도 죽는 이치를 부각한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또 “예산을 아무리 내려 보내도 지역에서 공무원들이 빼돌리고, 연고제로 배치된 공무원들이 단속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법치의 기초가 탄탄하게 닦이지 않으면 나라가 성장할 수 없다”고도 했다.

◆“무죄 결론 난 사건은 검사가 책임져야”=이 대통령은 이날 법무부 보고에서 “비리를 예방할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 이 방에 다 모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아도 상당히 긍정적인 변화를 이뤄낸 것을 안다”며 검찰을 위로했다. 동시에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수사하라’는 주문도 했다. 발언 강도도 셌다. 그는 “1심, 2심, 3심까지 무죄가 선고된 사건은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라”며 “수사검사들은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옷을 벗는다고 해서 검사가 책임을 지는 게 아니다. 변호사 개업하면 돈을 더 잘 버는 것 아니냐. …수사할 때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청와대 “한명숙 전 총리 수사와는 무관”=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해 “걸핏하면 정치수사라고 비난하지만 흔들림 없이 철저하게 수사에 임해달라”고 했다. 또 “국격을 높이기 위해선 정치(권)를 포함한 지도층의 비리를 없애는 게 중요하다”고도 말했다. 때문에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된 발언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청와대는 “전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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