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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천성 암은 '유전자 예방'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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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인간지놈(유전체)의 규명으로 바야흐로 '지놈 혁명의 시대' 가 활짝 열리고 있다.

이에 따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다가올 큰 변화를 여러가지 면에서 예측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내다보는 기술 혁신과 생활상의 변화를 세대별 주기인 30년 간격으로 미리 체험해 본다.

새로운 세대가 활약하는 2030년. 맞춤형 신약의 보급으로 약물 부작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약물 부작용은 복용한 뒤에야 알 수 있는 사후약방문격. 누구도 1백만분의1이란 페니실린 쇼크의 부작용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유전 정보를 이용해 체질에 맞는 약만 골라 복용하므로 약물 부작용을 원천 봉쇄할 수 있다.

건강검진시 질병 발생 확률 예보제가 실시된다.

혈액 한 방울만 DNA칩 위에 떨어뜨리면 '10년 후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20분의1' 이란 확률로 계산돼 나온다.

그러나 5년 후 대머리가 될 확률이 90%인 사람이라면 약혼자로부터 유전 정보를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고 난처해할 수 있다.

보험 가입과 채용 기준도 뿌리째 달라진다. 현재 병이 없더라도 질병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 보험 가입과 채용이 거부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유전 정보의 공개를 법적으로 금지했지만 간단한 혈액검사만으로 유전자 진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를 막기 어렵다.

빈부격차도 문제다. 10만개가 집적된 보급형보다 1백만개가 집적된 고성능 DNA칩으로 검진을 받으려면 한달치 월급을 모두 내야 하기 때문이다.

유명 인사들의 유골이 수난당하기도 한다. 뼈나 머리카락에 남아 있는 미량의 DNA만으로도 유전자 분석이 가능하다.

생체실험을 할 수 없으므로 특정 재능을 가진 유명 인사들의 유골이 대상이 된다.

담배회사에선 영국의 철학자 러셀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를 내놓고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한다.

러셀은 체인 스모커였지만 98세까지 장수했다. 과학자라면 아인슈타인이, 운동선수라면 베이브 루스의 유전자를 분석할 것이다.

이 점에서 음악계는 슬프다. 베토벤의 유골은 있지만 모차르트의 유골이 없기 때문. 분석 대상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천부적 재능의 소유자이어야 하는데 베토벤은 소문난 자수성가형 노력가다.

지놈 연구가 꽃을 피우는 2060년. 그동안 대증요법밖에 없었던 알레르기 질환이 완치된다.

집먼지진드기에 과민한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바꿔주는 기술이 등장해 인류는 마침내 대물림되는 체질마저 극복할 수 있게 됐다.

암도 완치의 길이 열린다. 대부분의 암 유전자를 찾아내 정상 유전자로 교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흡연이나 짠 음식, 불에 탄 고기 등 후천적으로 발생한 암은 여전히 예방이 어렵다.

마약이 합법화한다. 지놈 혁명으로 중독 유전자가 규명됐기 때문이다. 중독 유전자를 파괴하는 효소를 찾아냄으로써 인류는 마약의 쾌락은 자유자재로 즐기지만 중독의 굴레에선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연예인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뛴다. 사람들이 원하는 모델 유전자를 미리 확보하려는 유전공학회사들의 제의가 몰려들기 때문이다.

단신의 톰 크루즈는 키보다 코가, 삐쩍 마른 귀네스 팰트로는 몸매보다 고혹적인 눈이 대상이다.

이들은 혈액 한 방울이나 머리카락 한 가닥만으로 자신의 유전자에 대해 수억달러의 개런티를 요구한다.

이들의 외모를 닮은 자녀를 원하는 부모들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적 분쟁도 발생한다. 머리좋은 버나드 쇼와 잘생긴 마릴린 먼로를 닮은 아이를 만들려고 했으나 자칫 실수해 머리가 나쁘고 못생긴 아이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자신의 자녀라도 부모가 수정란을 조작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법안을 발표한다.

그러나 태아 성감별처럼 많은 부모가 비공식적으로 잘 생기고 머리좋은 슈퍼 아기를 낳기 위해 막대한 돈을 지불해 사회문제로 부각된다.

보건복지부장관이 교통사고 예방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인다.

지금까지 사망 원인 질환 1위와 2위를 차지했던 암.뇌졸중이 유전자 치료를 통해 현저히 감소한 반면 교통사고가 부동의 사망 원인 1위로 떠올랐기 때문. 교통사고만은 지놈 혁명의 지배를 받지 않는 유일한 사망 원인이다.

그러나 미 국립보건원은 교통사고도 인간의 조급한 마음 탓이라며 조급성을 조절하는 신경전달 물질의 유전자를 찾아내는 연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세기 말로 접어드는 2090년. 30억쌍의 염기서열을 모두 담은 전자주민증을 국민에게 발급한다.

응급사고로 병원에 가면 전자주민증을 이용해 자신의 유전자와 일치해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세포들을 이식받을 수 있다.

모든 병원은 간.위.뇌 등 응급치료에 필요한 장기들을 시험관에 세포의 형태로 보관하는 것이 의무화한다.

암세포만을 골라 죽이는 꿈의 면역세포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완성된다.

모든 종류의 암을 주사 한 방으로 없앨 수 있게 된 것. 종양내과 의사들은 대부분 실직하거나 암세포가 지닌 불사의 특성을 노화 극복에 응용하기 위한 연구로 전업한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하이브리드 인간이 출현한다.

하이브리드 인간이란 여러 인종의 유전자를 짜깁기한 인간. 머리카락은 흰색인데 피부는 노랗고 눈동자는 파란 인간이 탄생한다.

진화론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합성유전자도 등장한다. 인간은 왜 개처럼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가에 대한 원초적 불만이 동기다.

개의 후각세포를 주관하는 유전자를 사람의 유전자와 합성해 이식해준다.

독감이 유행해 한달 만에 1백만명이 생명을 잃는 사건이 발생한다. 최첨단 독감 치료제를 동원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이유는 대부분의 인간이 유전자 조작을 통해 미남미녀 등 특정 유전자만을 갖추느라 인구집단이 독감에 저항할 수 있는 생물학적 다양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권태 유전자를 찾아내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지놈 혁명으로 무병장수의 시대를 구가하는 인류에게 권태가 최대의 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태는 유전자가 아니라 학습.교육 등 후천적 요인이 결정적으로 관여하는 것으로 입증돼 난관에 봉착했다.

다시 종교와 철학이 고개를 들고 인류는 기원 전 소크라테스나 공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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