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남북관계 개선은 북 주민 삶의 질 기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정상회담의 성사는 곧 남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의미합니다. 강대국에 의해 빚어진 갈등이 문을 닫고 화해의 시대가 올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요. "

1980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아르헨티나의 인권운동가인 아돌포 페레스 에스키벨(69). 한국인권재단(이사장 신용석)과 한국언론재단(이사장 김용술)의 공동초청으로 26일 한국을 첫 방문한 그는 27일 가진 회견에서 "남북 관계 개선이 곧 한반도 인권 신장과 직결된다" 고 강조했다.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로 이산가족 상봉이 실현되면 분단의 고통은 조금씩 아물기 시작하겠죠. 또 북한 경제의 회복으로 주민들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은 인권의 주요 요소인 '자유' 를 한반도에 던져줄 수 있는 상서로운 조짐이란 것이다.

그가 최근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어린이 인권이다.

'아이들의 현실이 그 사회의 거울' 이라고 표현하는 에스키벨은 아이들이 노예로 전락하고 매춘에 종사하는 것 뿐 아니라 단순 범죄를 저지르는 것까지도 전적으로 그 사회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어른들에 의해 버려진 아이조차 피해자가 아니라 범죄자로 취급합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에스키벨은 그 대안으로 아이들을 위한 자유의 공간을 제안한다.

그 곳에서 아이들이 사회에 대해 긍정적 사고를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는 2백 여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어린이 집을 부에노스아이레스 근처 헤네랄 로드리게스에 마련, 운영 중이다.

"인권 개선은 '투옥이나 박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옛날 얘기입니다. 인권은 삶의 질과 직결돼 있습니다. 인권을 개선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입니다. 어린이 집도 이같은 교육의 한 방편이죠."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의 힘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에 입각 제안을 거절했다는 에스키벨은 62년부터 남미 각국에 만연한 인권 유린에 맞서 비폭력 저항운동을 해왔다.

76년 아르헨티나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자 '5월 광장 어머니회' 등의 단체를 결성해 독재에 저항했다.

80년 한국 군부가 인권을 탄압하고 김대중씨에 대한 사형선고를 내리자 이에 항의하고 구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던 그는 27일 청와대로 김대중 대통령을 예방했다.

에스키벨은 30일 서울대 근대법학교육 백주년 기념관에서 '평화와 인권' 을 주제로 강연한 뒤 출국한다.

글.사진〓신용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