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009 중앙일보 선정 새뚝이 [3] 사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산부인과 의사 최안나

쉬쉬해 왔던 낙태문제 제기
“불법 낙태 단속”정부 약속 받아내

최안나

인공임신중절(낙태)은 의사는 물론 산모도 처벌받는 엄연한 형법상 범죄다. 하지만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을 펴며 과거 수십 년 동안 낙태를 방조한 ‘원죄’ 탓에, 산부인과 의사들은 돈벌이에 급급해, 여성들은 원치 않은 임신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편리함 때문에 낙태 문제를 방치해왔다.

그런데 올 10월 낙태 문제가 갑자기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진앙지’는 낙태를 쉬쉬해 왔던 산부인과 의사들이었다. 30~40대 젊은 산부인과 개업의들의 모임인 ‘진오비’(GYNOB·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의 영어 약자)가 “내년부터 낙태 시술을 한 의사를 고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산부인과 개업의 최안나(43) 대변인 등 회원들이 처음 문제를 제기하자 주변에선 ‘계란으로 바위 치기’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최 대변인은 오전에만 진료하고 오후에는 낙태 근절운동에 ‘올인’했다. 그는 낙태 의사를 신고 받는 ‘낙파라치’를 도입하고, 낙태를 단속하지 않는 보건당국과 사법당국까지 고발하겠다고 나섰다. 우리 사회가 시끄러워졌다. 가장 먼저 반발한 건 다급해진 산부인과 의사회 내부였다. 일부 의사들은 최 대변인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최 대변인은 “또라이 소리를 듣고 있지만 낙태 근절운동을 계속할 것”이라며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결국 정부의 정책을 낙태 방치에서 근절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청와대도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저출산 대응전략 회의에 최 대변인을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복지부 전재희 장관은 “향후 낙태를 단속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정부가 불법 낙태를 단속하겠다고 밝힌 것은 처음이다.  

안혜리 기자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

“나영이 두 번 울린 사회와 싸우겠다”
성폭력 피해 아동 보호·관심 이끌어

신의진

지난 2월, 서울 강남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신의진(45) 교수의 진료실로 여덟 살짜리 여자아이가 들어섰다. 옆구리에는 커다란 성인용 대변 백이 채워져 있었다. ‘조두순 아동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 나영이(가명)였다. 나영이의 정신과 주치의를 맡게 된 신 교수는 우울증과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료해 나갔다.

신 교수는 치료뿐 아니라 나영이에게 상처를 준 이 사회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10여 년 동안 성폭력 피해 아동을 1000명 이상 진료해 온 경험이 힘이 됐다.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10월 31일자 1면)에서 “고통 받는 나영이에게 여러 차례 진술을 반복시킨 검찰의 잘못이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떠올리기 괴로운 기억을 여러 번 불러내 2차 피해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환자 보호를 소홀히 한 의사, 아동 성폭행 사건에 무지한 여성부에 대한 비난도 가차없이 쏟아냈다.

이후 사회 각계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도움을 주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했다. 신 교수는 “아이를 둔 엄마들을 비롯해 20대 청년, 의료업체, 미국 한인모임 등 수많은 곳에서 연락이 왔다”고 전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본격적으로 나영이를 비롯한 성폭력 피해 아동을 위해 기금을 모으기로 했다. 의사협회는 ‘의료 기동반’을 꾸리겠다고 나섰다. 경찰과 공조해 사건 현장에 의사를 파견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신 교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그는 “담당자 한두 명에게 경고하고 범인의 형량을 좀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피해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경 기자


서울대 합격 카마숨바
학업 꿈 접었던 잠비아 학생 ‘코리안 드림’

카마숨바

올해 서울대 수시모집 외국인 특별전형(농경제사회학부)에 합격한 잠비아 출신의 켄트 카마숨바(20)는 ‘코리안 드림’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켄트가 자란 잠비아는 아프리카의 최빈국 중 하나다. 특히 그의 고향은 잠비아 수도 루사카에서 200㎞나 떨어진 오지였다. 그는 들녘에서 딴 과일과 야채로 하루 한 끼만 먹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자랐다. 켄트는 한 학년이 2000명이 넘는 ‘천막 교실’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지난해 고향에 있는 고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대학에 갈 돈이 없어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이때 우연히 경남 산청 지리산고의 의뢰를 받고 한국에서 공부할 학생을 찾고 있던 백예철 선교사의 눈에 띄었다. 지리산고는 형편이 어려워 일반고등학교에 다닐 수 없는 국내외 학생을 무료로 공부시키는 대안학교다. 켄트는 “한국의 경제부흥 비법을 배워 고국을 잘살게 하고 싶어 유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올 4월 지리산고 3학년에 편입한 지 7개월 만에 서울대에 합격했다.  

김상진 기자


택시 기사 정태성씨
MK택시서 배운 서비스 정신 전파 … 유명 강사로 부상

정태성

행정안전부 과천청사관리소, 경기도교육청, 통영시청, 삼성생명, 인천시 교통연수원 …. 택시 기사 정태성(44)씨가 올해 강연을 했던 곳들이다. 그는 본지 7월 3일자 31면에 ‘공부하는 택시 기사’로 소개됐다. 세계 최고의 서비스를 배우기 위해 일본 MK택시 신입사원 연수를 다녀왔다는 사연이었다. 정씨는 수동기어변속(스틱) 차량을 몰아 아낀 돈으로 대학원 서비스경영학과에 다니고, 30개의 서비스 매뉴얼을 지참해 택시 손님을 모신다.

기사가 나간 뒤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지금까지 30여 곳의 강단에 섰다. 그는 최근 연 120만원의 회비를 내고 삼성경제연구소의 최고경영자(CEO) 대상 경영정보사이트에 가입했다. 어떤 손님을 만나도 다양한 주제로 대화하려면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본업인 택시 운전은 놓지 않을 계획이다. 그는 “택시 서비스에 한계는 없다”며 “서비스를 더 공부하기 위해 석사 학위를 따면 박사 과정에도 진학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