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장수 브랜드의 비결은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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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92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들어진 면도기·소형가전 브랜드 ‘브라운’. 생긴 지 88년 된 장수 브랜드로 전 세계 소비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그동안 주인은 두 번 바뀌었다. 67년 미국 질레트에 인수됐다가 2005년에 P&G가 주인이 됐다. 1906년 설립된 프랑스 광천수 브랜드 ‘페리에’도 네슬레에 인수되면서 더 많은 국가의 소비자들과 만나고 있다. 이처럼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는 주인이 바뀌어도 계속 살아남는다.

올 3월 시작된 본지의 장수 브랜드 시리즈는 국내 소비자의 사랑을 받은 27개 브랜드를 다뤘다. 이들을 살펴보면 오랫동안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남다른 비결이 보인다.

우선 당시 소비자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짚어, 없던 시장을 열었다. 시대를 정확히 읽었다는 얘기다. 맛없는 통일벼가 대세였던 시절 밥맛을 맛있게 해준 압력솥 ‘풍년’, 아파트 보급과 더불어 허리를 펴고 일하는 현대식 부엌이 확대될 것이란 점을 꿰뚫어 본 부엌가구 브랜드 ‘한샘’이 그렇다.

타협하지 않는 품질도 공통점이다. 초콜릿 덩어리를 수입해서 녹여 만들어도 될 것을 굳이 초콜릿 원두를 구하러 아프리카 가나까지 간 ‘가나 초콜릿’이 그렇고, 설비 투자비가 훨씬 더 들어도 두유를 들여와 포장하는 대신 대두 자체를 수입해 착즙하는 ‘베지밀’도 마찬가지다. 제품과 함께 눈에 띄게 성장한 기술력도 흐뭇한 부분이다. 외국 제약회사로부터 원료를 도입해 우루사를 만들던 대웅제약은 이제 우루사 원료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회사로 컸다.

그러나 장수 브랜드의 가장 중요한 생존 조건은 변신이었다. 항상 소비자에게 신선함을 주는 동시에 친근함도 줘야 한다는, 두 가지 부딪히는 딜레마를 현명하게 풀었다. 예컨대 농심 신라면은 소비자의 변하는 입맛에 따라 매운 맛을 몇 년마다 꾸준히 바꿔왔다.

아직 국내 기업은 세계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글로벌 장수 브랜드’를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기업과 제품 역사가 선진국에 비해 짧은 탓이다. 하지만 앞선 기술력과 시장을 꿰뚫는 안목으로 지금처럼 제품을 키워나간다면 우리 세대에 글로벌 장수 브랜드 탄생을 볼 수도 있을 듯싶다.

최지영 경제부문 기자